입력 : 2008.11.05 04:10
정부 메가톤급 대책 발표 이후 시장은?
매도 희망가 올랐지만 사려는 사람 없어
"불황 시작인데 발표만 믿고 집 안사겠다"
"오늘도 집 주인들 문의 전화만 잔뜩 받았습니다. 드물게 매수 문의를 해 오신 분들은 좀 더 기다려 보겠다며 발을 빼네요."
재건축 추진 단지인 서울 강동구 고덕시영아파트 인근 실로암부동산 양원규 사장은 4일 "정부가 메가톤급 규제 완화를 내놔도, 집을 사려는 사람이 좀체 없다"고 말했다. 하루 전 정부가 용적률 최대 300%까지 인상이라는 파격적 재건축 규제 완화를 결정했지만, 서울 시내 주요 재건축 단지 중개업소들은 이날 대부분 거래 없이 하루를 보냈다. 서울 대치동 은마아파트나 잠실 주공5단지 등 규제 완화 혜택 단지의 매도 희망가는 4000만~5000만원씩 올랐지만, 매수자는 거의 없었다. 은마아파트 인근 에덴부동산 관계자는 "매수자들이 관심을 보이다가도, 막상 집 주인들이 가격을 올리면 '불경기가 이제 시작인데 서두를 필요 있냐'며 돌아선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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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도·매수자 간 힘겨루기 장세= 이날 서울 대치동, 잠실동, 개포동, 고덕동 등 재건축 추진 아파트들이 있는 곳에서는 비슷한 모습이었다. 집 주인들은 재건축 사업이 속도를 낼 것이란 기대감에 매물을 거둬들였지만, 매수자들은 오른 가격에 부담을 느껴 가격만 물어 보고 뒤돌아 섰다. 은마아파트 102㎡의 경우 이번 주 8억4000만원~8억5000만원으로 매도 희망가가 뛰었으나, 매수 대기자들은 대책 발표 직전 가격인 7억원 후반~8억원을 희망하고 있다. 송파구 잠실주공5단지 115㎡ 역시 지난 주말 9억5000만원이던 매도 희망가가 어제 10억원으로 뛰었으나, 매수자를 찾지 못하고 있다.
서울 반포동 건설공인 김석중 사장은 "과거와는 달리 집 주인들이 매도 희망가를 올려도, 매수자들이 그 가격을 좀체 따라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불황 여파에, 정책 의구심까지= 이런 상황은 기본적으로 전반적인 경기 불황과 주택 시장 침체 여파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금융 위기를 거쳐 실물 경기 냉각이 예상되는 상황에서 누가 서둘러 집을 사겠느냐는 것. 서울 잠실동 현대공인 관계자는 "지금 매수 문의하는 분들도 이미 자기 집을 팔아 버린 사람들"이라며 "매수층이 그리 두텁지 않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일부 지역에선 정부 정책이 예정대로 실행될 지에 대한 의구심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의 한 재건축 단지에서 중개업소를 운영 중인 김모 사장은 "재건축에 대한 실질적 권한을 갖고 있는 서울시가 정부 발표에 반발하는 모습을 보여 과연 정부 발표대로 재건축 규제가 풀릴 지 의문을 갖는 문의가 많았다"며 "불경기에 발표만 믿고 섣불리 집을 사지는 않겠다는 반응들이었다"고 말했다. 실제 서울시가 국토해양부와의 정책 조율에 성공하더라도, 관련 조례를 바꾸고 시행령을 개정하기까지는 여러 달이 필요할 것으로 예상된다.
각 가구가 재건축을 위해 내야 하는 공사비(추가 부담금) 문제도 걸림돌이다. 대지면적대비 건물연면적 비율인 용적률이 높아지면 일반 분양물량이 늘어나 공사비가 줄어들 수 있다. 그러나 공사비는 줄어도, 면적이 기존에 비해 크게 늘지 않더라도 가구별 추가 부담금이 1억~2억원을 훌쩍 넘는 단지도 적지 않다.
부동산써브 채훈식 팀장은 "집값 상승기에는 추가 부담금이 재건축의 걸림돌이 되지 않지만 요즘 같은 집값 하락기엔 적지 않은 부담으로 작용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편 재건축을 추진 중인 각 단지 추진위원회나 조합들은 현실적으로 가능한 조치부터 해 나가겠다는 입장이다. 은마아파트 재건축사업 추진위원회는 건설사 측에 사업계획안 검토를 의뢰했고, 잠실 주공5단지 측도 조만간 재건축을 위한 안전진단을 신청하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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