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8.07.08 23:34 | 수정 : 2008.07.09 02:58
강남 대형 거래 끊겨… 올해만 최고 6억원 떨어져
1~2억 싼 급매물 쏟아지며 낙폭 더 커져
주변 집값도 떨어뜨려… 경매서도 찬밥
2005년 1월 서울 강남구 대치동 A아파트를 사들인 박모(48)씨는 두 달 전 이 아파트를 처분하기로 결심했다. 대출 이자가 연 8%로 올라 매달 600만원 가까이 되는 돈을 갚아야 하는 데다 하반기에 줄줄이 내야 할 보유세 부담도 만만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 초 25억~26억원에 거래되던 이 아파트는 최근 22억~23억원으로 호가가 뚝 떨어졌지만 매수자가 나오지 않고 있다. 박씨는 "옛날에 잘 나갔던 대형 고가(高價) 주택이 이젠 아무도 쳐다보지 않는 '천덕꾸러기'가 된 것 같다"며 허탈해했다. 지난 2002~2006년 주택 호황기에 집값 상승을 주도했던 고가 주택이 속절없이 무너지고 있다. 게다가 최근에는 여름철 비수기를 맞아 시세보다 1억~2억원 낮춘 급매물도 쏟아지면서 하락 폭이 점점 커지고 있다.
서울 강남구 도곡동 B아파트(142㎡)는 올 초만 해도 22억원을 호가했다. 그러나 지난 6월에는 17억8000만원까지 내려 거래가 됐다. 지난 6개월 사이 4억원 이상 하락한 것이다. 더욱이 이달 들어서는 16억원까지 가격을 내린 급매물이 나왔지만 문의 전화조차 없다고 인근 부동산 중계업체들은 전했다.
20억원이 넘는 초고가 아파트들은 다른 지역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경기 분당신도시에 위치한 C주상복합(179㎡) 역시 비슷한 기간 21억원대 중반에서 16억원으로 호가가 급락했다. 부동산정보업체 '닥터아파트' 이진영 팀장은 "강남권 안에서도 중소형 주택은 거래가 띄엄띄엄 이뤄지고 있지만, 중대형 고가 주택은 거래가 끊기면서 더 큰 타격을 입는 것 같다"고 말했다.
고가 주택이 침체를 거듭하다 보니 대형·고가 아파트가 분양에 나서더라도 주변 아파트 값은 요지부동이다. 지난달 분양에 나선 서울 서초구 '반포 자이' 297㎡의 분양가는 29억8285만원. 하지만 인근 잠원동이나 서초동 아파트 값은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 아파트를 분양 받은 이들이 자신이 살던 집을 매물로 내놓으면서 가격 하락을 더욱 부채질하고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서초동에 사는 송모(42)씨는 "예전에는 주변에 분양하는 아파트 값이 비싸면 덩달아 올랐는데 이제는 미분양만 생기고 오히려 집값 하락을 부추기는 것 같다"고 말했다.
경매시장에서도 고가 주택은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지난달 중순 서울중앙법원 경매법정. 이날 경매에 나온 서울 서초구 A아파트의 감정가액은 27억원. 하지만 이 주택은 21억6000만원부터 경매가 시작됐다. 지난 5월 경매에도 나왔지만 사겠다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 한 차례 유찰되면서 가격이 20% 깎였기 때문이다. 결국 이날 경매에도 한 명만이 참가해 감정가보다 4억8300만원이 싼 22억1700만원에 낙찰됐다. '지지옥션' 강은 팀장은 "가격 하락세가 이어지고 있는 가운데 세금·대출 이자에 대한 부담이 오히려 증가하자 고가 주택에 대한 관심은 더욱 시들해지는 분위기"라며 "투자자들 사이에선 고가 아파트를 살 돈으로 차라리 소형 주택이나 오피스텔을 여러 채 사두는 게 낫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라고 말했다.
◆주택경기 침체로 이어질 수도
고가 주택의 하락 폭이 커지는 주된 이유로는 매물은 꾸준히 늘어나는 반면 매수세가 되살아날 가능성이 거의 없기 때문이다. 부동산 투자자문사 '저스트알' 김우희 상무는 "매년 수천만원씩 나오는 종부세와 대출이자 부담으로 집을 팔겠다는 수요는 늘고 있지만 6억원 초과(공시지가 기준) 주택에 대한 대출 규제와 세금 부담으로 매수세는 끊어진 상태여서 고가 주택의 가격 회복은 상당 기간 어렵다"고 말했다.
고가 주택의 하락이 주택시장 전반의 침체를 가속화시킬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부동산뱅크' 김용진 본부장은 "고가 주택은 조금만 떨어져도 가격 하락 폭이 상대적으로 크기 때문에 수요심리를 위축시키는 등 주택시장 전반에 미치는 파급 효과가 크다"고 말했다. '닥터아파트' 이영호 리서치센터장은 "올 초까지만 해도 새 정부가 양도세와 종부세를 낮춰줄 것이라는 기대감 때문에 고가주택의 가격이 어느 정도 유지가 됐다"면서 "하지만 시간이 갈수록 새 정부가 부동산 세금 정책을 바꿀 가능성이 낮아지면서 고가주택 낙폭이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