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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인은 왜 아파트에 열광하는가

    입력 : 2007.04.23 18:50 | 수정 : 2007.04.23 21:51

    아파트가 전체 주택 공급의 90%, 단독주택은 멸종 위기

    ‘아파트 공화국’ 논란

    최근 타운하우스 분양이 붐을 이루면서 아파트 중심의 주거문화가 바뀔 것인지에 대한 관심들이 높아지고 있다. 특히 프랑스의 지리학자 발레리 줄레조가 쓴 ‘아파트 공화국’이란 책이 출판되면서 우리의 아파트 문화를 둘러싼 논쟁이 촉발되고 있다. 그는 “서울은 (아파트 때문에) 오래 지속될 수 없는 하루살이 도시”라는 평가를 내릴 정도로 우리 주거문화를 ‘비정상적’이라고 비판했다.

    그의 비판이 아니더라도 한국은 어떤 나라보다도 아파트 비중이 절대적이다. 전체 주택에서 아파트가 차지하는 비율이 85년 13.5%에서 95년 37.5%, 2005년에는 53%로 급증하고 있다. 1979년만 해도 단독주택(13만2354가구) 공급이 아파트공급(8만8432가구)을 압도했다.

    하지만 작년 아파트는 40만 가구 이상이 공급됐지만 단독주택은 3만 가구도 지어지지 않았다. 우리와 국토 구조가 비슷한 일본의 경우, 아파트 공급 비중이 20% 정도로, 우리에 비하면 미미한 수준이다. 이 같은 추세라면 머지 않은 장래에 단독주택은 멸종 위기에 처할지도 모른다는 비판까지 나올 정도이다.

    “아파트 때문에 서울은 하루살이 도시” 비판론

    발레리 줄레조는 프랑스의 아파트 단지가 주로 이민자·저소득층이 사는 ‘슬럼의 상징’인데 반해 서울의 아파트가 중산층은 물론 부유층까지 선호하는 주택이 된 것을 이해 할 수 없다고 했다. 우리도 애초에 아파트는 서민들에게 값싸게 대량으로 주택을 공급하기 위한 수단으로 도입됐다. 그래서 60~70년대만 해도 아파트는 서민주택의 상징이었다. 값싸게 날림으로 지어 붕괴사고가 난 와우아파트가 대표적이다.

    그러나 이제 아파트는 중산층은 물론 부유층도 선호하는 ‘절대 강자’로 자리잡고 있다. 땅값이 비싼 도심뿐만 아니라 토지 가격이 싼 시 외곽은 물론 지방에서도 아파트가 대량으로 지어지고 있다. 아파트는 저렴하게 주택을 공급한다는 당초 취지도 고급화 경쟁·고층화 경쟁으로 사라진 지 오래다. 오히려 아파트 용지 취득경쟁으로 땅값을 올리는 부작용도 빚어지고 있다.

    그렇다면 한국인들이 아파트에 열광하는 이유는 뭘까. 그 비결은 가장 유효한 재테크 수단이기 때문이다. 발레리 줄레조는 70~80년대 시세차익을 보장해주는 분양가 통제 시스템이 아파트를 중산층 주거문화로 자리 잡게 한 결정적 계기라고 분석했다. 시세차익을 노리고 너도 나도 아파트로 몰렸고 아파트에 당첨된 사람들은 막바로 중산층으로 편입될 수 있었다는 것. 분양가 자율화 이후에도 여전히 아파트 중심의 문화가 유지되는 것도 ‘아파트=재테크’라는 등식이 성립됐기 때문이다. 지난 3~4년간 아파트는 단독주택이나 연립주택보다 서너배 높은 가격 상승률을 기록했다. 돈이 되지 않는 단독이나 연립주택이 외면받는 것은 재테크 시장의 법칙일지도 모른다.

    주택이 재테크 수단이 되면서 장기 거주하기 보다는 빨리 집을 팔고 집값이 더 오를 곳으로 옮기는 ‘유목민적 주거형태’를 자랑하고 있다. 선진국의 주택거래량이 전체 주택의 5%정도에 불과한데 비해 우리는 작년 19%가 거래될 정도였다. 건설산업전략연구소 김선덕 소장은 “아파트는 표준화된 평면을 갖고 있고 가격 정보가 수시로 공개되기 때문에 환금성이 뛰어난 점도 인기의 비결”이라고 말했다. 아파트는 마치 증시의 블루칩(우량주)과 같은 존재라는 것.

    선진국과 달리, 느슨한 건축규제로 단독주택지역에 다가구·다세대 등이 무분별하게 개발돼 주거 여건을 악화시킨 점도 아파트 공화국을 만드는데 일조했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재룡 연구위원은 “다른 형태의 주택은 주차장이 도로 등 편의시설이 부족한 주거지라는 부정적인 인식이 고착화되면서 편의시설을 잘 갖춘 아파트로만 수요가 몰렸다”고 분석했다.

    “고령자·맞벌이 부부에게 적합” 옹호론

    일부에서 소득이 높아지면 아파트가 외면받을 것이라는 ‘아파트 부정론’을 주장하고 있다. 하지만 아파트의 강점에 대한 옹호론도 만만치 않다. 서울뿐만 아니라 싱가포르, 홍콩 등도 아파트 중심의 주거문화이다. 단독주택 중심인 일본도 도쿄 등 대도시를 중심으로 고급 주상복합 등 아파트 공급이 날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뉴욕 등 선진국도 도심 재개발 붐이 불면서 고층 아파트의 인기가 되살아나고 있다. 한국의 건설업체들은 중국·베트남 등에 아파트를 수출하고 있다. 발레리 줄레조가 슬럼가의 상징이라는 프랑스의 아파트 단지는 자가(自家) 주택이 아니라 임대주택이다. 임대주택이다 보니 이민자나 저소득층이 몰려 살고 자신의 집이 아니어서 주택관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노후화가 심화돼 슬럼화됐다. 반면 우리의 아파트는 대부분 자가 소유이기 때문에 리모델링을 통해 개보수되거나 재건축을 통해 새 아파트로 변신한다. 그래서 발레리 줄레조가 지나치게 서구 중심적, 제국주의적인 시각으로 한국의 주거 문화를 폄하했다는 비판도 나오고 있다.

    더군다나 일본정부가 고령화 시대의 도시개발론으로 제시되고 있는 ‘콤팩트 시티’(Compact City)도 단독주택보다는 아파트에 가깝다. 콤팩트 시티는 걸어서 편의시설을 이용할 수 있도록 주택·편의시설을 촘촘하게 배치하는 도시계획 기법이다. 삼성경제연구소 박재룡 연구위원은 “아파트는 단독주택에 비해 유지·관리비가 적게 들고 놀이터·노인정·공원 등 주민편의시설을 잘 갖출 수 있다는 점에서 다른 유형의 주택에 비해 강점을 갖고 있다”고 말했다.

    특히 맞벌이 부부는 편의시설을 잘 갖춘 아파트를 선호할 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주장이다. 주택도시연구소 박신영 연구위원은 “원스톱 생활 서비스가 가능한 주상복합아파트 등 노인들에게 적합한 주거 형태”라고 평가했다.

     

    아파트는 곧 돈, 부의 상징으로 주거 수단이 아닌 재테크 상품

    집값 안정되고 소득 높아지면 개성있는 주거 형태 늘어날 것

    고급 수요자는 단독 타운하우스 선호할 듯

    최근 분양된 교외의 타운하우스 등이 인기를 끌면서 소득 수준이 높아지면 ‘교외형 전원주택’이나 ‘타운하우스’ 등이 확산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타운하우스가 아파트만큼의 인기상품이 되기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시각이다. 박신영 연구위원은 “타운하우스가 편의시설과 유지 관리비 측면에서 아파트에 비해 떨어지기 때문에 틈새상품은 될 수는 있어도 아파트의 인기를 능가하기는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주택시장이 안정된다면 현재와 같은 아파트 일변도의 주거문화는 변화가 가능하다는 게 전문가들의 전망이다. 재테크에 따른 주거 선택이 아니라 개성에 따른 주거 선택이 이뤄진다면 다른 형태의 주택 수요도 크게 늘어날 수 있다는 것. ‘드림사이트코리아’ 이광훈 사장은 “아파트에 만족하지 못하는 고급 주거 수요자들이 타운하우스·단독주택 등 다른 형태의 주거를 선택하기 시작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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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타운하우스(Townhouse) 2~3층짜리 단독주택을 연속적으로 붙인 구조. 수영장·공원 등 주민편의시설을 갖추고 있고 방범과 주택관리 등도 주민공동으로 이용 가능하다. 단독주택의 독립성과 아파트의 편리성을 함께 갖고 있다는 점이 특징이다.

    발레리 줄레조 프랑스 지리학자. 지난 1993년 한국을 방문한 후 프랑스와 너무 다른 서울 주거문화에 충격을 받고 서울의 아파트에 대해 집중 연구해 파리 4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최근 ‘아파트 공화국’이란 책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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