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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체기합’ 받는 ‘투기지역’

    입력 : 2007.01.14 23:24 | 수정 : 2007.01.15 07:14

    투기와 무관한 곳까지 도매금… 국민 77%가 규제대상
    집값 내린 곳에도 규제폭탄 족집게식에서 땜질식 변질
    지정할땐 급행 해제땐 완행

    ‘투기지역에 산다는 죄(罪)’.

    국민의 77%가 거주하는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에 정부의 각종 부동산 규제가 집중되면서, 투기와 무관한 일반인들까지 선의의 피해를 보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인천시 남구 학익동 S아파트에 사는 김모(45)씨는 지난해 10월 24평 아파트를 1억1000만원에 내놓았으나 아직 팔리지 않고 있다. 정부가 작년 12월 이 지역을 ‘투기지역’으로 지정하는 바람에 매수세가 완전히 끊겼다는 것이다. 인근 아파트값이 1년간 20% 이상 오르는 동안 오히려 값이 5%나 떨어진 것도 속상한데 엎친 데 덮친 격이다. 이 지역 공인중개사 김영옥(58)씨는 “재개발·재건축 지역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투기와 무관한 인근 저가(低價) 아파트 지역까지 도매금으로 투기지역으로 지정한 것은 지나치다”고 말했다.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는 ‘핀셋 규제(필요한 지역만 집어 규제하는 것)’를 명분으로 각각 2002년, 2003년에 도입됐는데, 10차례의 부동산 정책을 거치면서 온갖 규제가 덕지덕지 붙었다.

    현재 투기지역엔 10개, 투기과열지구엔 8개의 대출·세금·거래제한 규제가 적용되고 있다. 국민 10명 중 약 8명꼴로 8~10개 이상의 각종 부동산 규제를 받고 있다는 얘기다.

    ◆국민 77%가 부동산 규제 대상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는 부동산값이 많이 뛴 지역에 초점을 맞춰 정책 대응을 하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하지만 지정되는 지역이 계속 늘어나면서 너무 범위가 넓어져 당초 의도했던 ‘핀셋 규제’의 효과가 실종됐다.

    전국 250개 시·군·구 중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곳은 91곳(36%)이고, 투기과열지구는 127곳(51%)에 이른다.

    본지가 인구 수를 계산해보았더니, 2005년 말 기준으로 투기지역 거주 인구는 2824만명(전체 인구의 60%), 투기과열지구는 3511만명(74%)에 달했다.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를 합치면 모두 3635만명으로, 전체 인구의 77%가 해당된다.

    ◆‘행정편의주의’

    당초 투기지역은 양도소득세를 기준시가 대신 실거래가로 부과한다는 목적에서 출발했으나, 시간이 흐르면서 다른 규제에까지 광범위하게 이용되기 시작했다. 지난주 ‘1·11대책’에서도 ‘투기지역’에는 주택담보대출 1인 1건 제한, ‘투기과열지구’에는 민간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조치가 추가됐다.

    정작 양도세의 경우 올해부터 전국적으로 실거래가 과세가 실시되므로 당초 투기지역 지정제도의 의미가 퇴색했지만, 다른 규제들이 10개로 늘어났다. 재경부 고위 관계자는 “투기지역 지정제도를 정리하려 해도 투기지역에 대한 규제들이 급격히 늘어나 손댈 수 없는 상황”이라고 밝혔다.

    투기과열지구 역시 전매(轉賣)제한 등을 통해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기회를 넓혀주자는 목적으로 도입됐으나, 총부채상환비율(DTI) 40% 규제 및 민간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등이 추가돼 규제가 8개로 늘었다. 손재영 건국대 교수(부동산학)는 “관료들이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를 행정편의주의적으로 손쉽게 집값 잡는 도구로 쓰고 있다”며 “주택 규제는 10년 앞을 내다볼 수 있어야 하는데, 규제를 덕지덕지 갖다 붙이다 보니 정책의 예측성과 일관성을 상실했다”고 지적했다.

    정부 관계자는 “전국적으로 실시하기에 부담이나 논란이 있는 경우 정부나 여당에서 가장 손쉽게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를 타깃으로 잡는다”라며 “일종의 ‘테스트 존(Zone)’역할로도 볼 수 있다”고 했다.

    ◆지정 해제는 미적거려

    게다가 투기지역과 투기과열지구는 한번 지정되면 여간해서 해제받을 수 없다. 본지가 국민은행 주택통계를 기초로 분석한 결과, ▲대구 동구·달서구 ▲대전 유성구·대덕구 ▲충남 아산시 ▲강원 원주시 ▲경북 포항북구 등은 투기지역 해제요건(지정 후 6개월이 경과하고, 최근 3개월간 집값 상승률이 전국 평균 이하일 것)을 갖췄음에도 해제가 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백성준 한국건설산업연구원 박사는 “투기지역이나 투기과열지구 해제 요건을 충분히 갖췄는데도 관료들이 눈치를 보고 해제를 못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지정 과정의 불합리성도 문제가 되고 있다. 예컨대, 지난해 12월 투기지역으로 지정된 경기도 양주시 안에서도 삼숭동 양주자이2단지는 지난해 이후 집값이 59% 올랐지만, 광사동의 D아파트는 2.04% 하락해 지역별로 편차가 크다.

    곽창선 부동산퍼스트 전무는 “거래 물량이 적어 대표성이 없는데도 한번이라도 높게 거래되면 투기지역으로 지정하고, 최근 분양된 아파트가 한두 건밖에 없는데도 청약률이 높으면 투기과열지구로 지정하는 불합리한 경우가 많다”며 “투기꾼을 잡기 위해 일종의 ‘마녀사냥’을 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키워드

    ◇투기지역: 재정경제부가 지정하며, 세제상 불이익을 중심으로 10개의 규제가 적용된다. 월별 집값 상승률이 전국 소비자 물가상승률보다 30% 이상 높은 지역 중 �2개월간 집값상승률이 전국 평균보다 30% 이상 높거나 ▲1년간 집값 상승률이 3년간 전국 평균 상승률보다 높은 지역이 대상이다.

    ◇투기과열지구: 건설교통부가 지정하며, 청약자격·분양가 불이익을 중심으로 8개의 규제가 가해진다. 집값 상승률이 물가상승률보다 현저히 높은 지역으로 ▲2개월간 청약경쟁률이 5대1을 넘거나 ▲주택전매행위 성행 현상이 있는 경우 등이 요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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