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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꺼진 지방 부동산

    입력 : 2006.12.30 01:14

    [현장 르포]“서울 집값 잡겠다고 지방까지 옥죄나”
    부산·대구·광주 등 매매 ‘꽁꽁’
    잔금 마련못해 이자 눈덩이로 신용불량·가정해체…민심 흉흉

    “왜 서울 강남 집값 오른다고 애꿎은 부산 집까지 때려잡습니까?” 지난 25일 밤 9시, 부산 민락동에서 만난 강모(35·회사원)씨는 “주택 문제 때문에 곧 신용불량자가 될 위기”라며 “부산 부동산 시장은 죽어가고 있으니 제발 서울·수도권 규제를 풀어달라”고 호소했다. 강씨는 분양 받은 새 아파트 중도금·잔금을 치르기 위해, 지금 사는 집을 1년 전 매물로 내놓은 상황.

    하지만 집을 보러 오는 사람도 아예 없다. 1가구 2주택 양도세 중과, 주택담보대출 규제 등 수도권을 겨냥한 부동산 대책이 쏟아져 나오면서 가뜩이나 어려운 지방 부동산시장이 더 꽁꽁 얼어붙고 있기 때문이다. 강씨는 “연체이자만 한 달에 500만원 가까이 물고 있고, 내년 2월까지 중도금·잔금을 마련하지 못하면 신용불량자가 될 형편”이라며 “얼마 전에는 정신과 치료까지 받았다”고 말했다.

    분양때 큰 화제를 뿌렸던 부산 해운대구 수영만 주상복합타운의 심야 풍경. 대부분 입주가 끝났지만 실제 입주한 비율이 높지 않아 밤에는 불 켜진 곳을 찾기 힘들다/김용우기자

    ◆신용불량에 가정해체 위기의 부산

    서울·수도권은 집값 강세가 여전하지만, 부산·대구·광주 등 지방의 세밑 집값 민심이 흉흉했다. 매매는 실종되고, 수요자들은 겨울 칼 바람보다 더 매서운 자금난에 떨고 있다. 특히 상황이 안 좋은 곳이 부산이다. 부산 수영구에 거주하고 있는 박모(여·40)씨도 내년에 입주할 아파트 중도금·잔금을 마련하지 못한 끝에, 이 집 입주권을 분양가보다 2000만원이나 싸게 내놓았지만 사겠다는 사람은 없다. 박씨는 “부부 중 한 사람의 신용이라도 살리기 위해 조만간 위장 이혼을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주부 조모(46·부산 연제구)씨는 같은 이유로 위장 이혼했다가 남편에게 여자가 생겨 가정이 깨지는 비극을 겪기도 했다고 말했다. 부산 주택 시장은 수급이 완전히 무너졌다. 부산 인구는 1995년 385만명에서 지난해 360만명으로 오히려 줄었다. 출산율은 0.88%로 전국 대도시 중 가장 낮고, IMF 위기 이후 부산을 떠나 다른 지역으로 옮긴 기업만 1000개를 넘는다.

    하지만 2~3년 전 시작된 건설사의 지방 진출 러시로 공급은 넘쳐나고 있다. 이 때문에 11월 말 현재 부산의 미분양 물량은 8299가구에 달한다. 기장군 정관신도시에서는 건설사들이 모델하우스에 ‘계약금 1%’, ‘중도금 전액 무이자’ 같은 플래카드를 내걸고 분양에 안간힘을 쓰고 있었지만, 일부 단지를 제외하고는 분양 실적이 극도로 저조했다. 업계에서는 “A사의 분양률은 20%도 안된다”, “B사는 딱 1채만 계약됐다더라”는 소문만 무성했다.

    ◆대구·광주도 미분양 폭증에 매매 실종

    대구 상황도 비슷하다. 기존 아파트 매매 시장은 정체 상태이고, 새 아파트 분양도 저조한 상황이다. 대한공인중개사협회 정석윤 대구지부장은 “지난해 ‘8·31대책’ 이후 기존 아파트와 분양권 모두 매매가 끊긴 상태”라고 말했다. 대구시에 따르면, 미분양 아파트는 11월 말 현재 7987가구를 기록, 지난해의 2배를 넘어섰다.

     ‘대구의 강남’이라던 수성구도 상황은 마찬가지다. 분양 아파트의 프리미엄이 뚝 떨어진 것은 물론, 미분양 물량까지 나오고 있다. 2004년 분양된 수성구 C아파트 49평형의 경우, 한 때 7000만~8000만원까지 붙었던 웃돈이 요즘 2000만원 대로 하락했다. 아파트를 구입했다 손해를 보는 경우도 나오고 있다. 2년 전 4억원 가량에 분양된 동구의 D아파트 46평형이 대표적인 경우다. 계약자들이 주로 대출을 통해 중도금을 내 왔는데 그 이자만 2000만원을 넘었다. 그러나 웃돈은커녕 분양가에도 팔겠다고 해도 사려는 사람이 없다고 주변 중개업소들은 전했다.

    전라남도 광주 역시 부동산 불황에 허덕이기는 마찬가지이다. 올해 분양한 수완지구가 소비자들의 인기를 끌지 못하면서 미분양 아파트가 급증했다. 광주시청에 따르면, 작년 1월 4707가구였던 미분양 주택은 최근 8587가구까지 늘었다. 광주의 부동산 중개업자들은 “광주 역사상 최대의 미분양 물량”이라고 밝히고 있다.

    부산 기장군 정관신도시 모델하우스에 걸려 있는 한 건설사의 플래카드. 건설사들이 계약금 1%, 계약금 500만원, 중도금 전액 무이자 융자, 전세대 풀옵션 시공,발코니 확장 무료 등의 조건을 내걸고 있지만 일부 단지를 제외하고는 저조한 분양률을기록 중이다/장원준기자

    ◆불경기에 집값 대책 유탄이 원인

    지방 부동산 시장의 한파는, 극심한 불경기와 공급 과잉에다 서울·수도권을 겨냥한 집값 안정책의 유탄(流彈)까지 맞았기 때문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물가 상승을 감안하면, 올해 부산·대구·광주의 집값은 서울·수도권에 비교할 때 사실상 제자리 걸음을 했다.

    시세조사업체 ‘부동산114’에 따르면, 서울의 아파트 평당가는 올해 32% 올랐지만, 부산·대구·광주는 5% 오르는 데 그쳤다. 다른 조사업체인 ‘스피드뱅크’는 5대 광역시의 올해 집값 상승률이 0.4%에 불과한 것으로 분석했다.

    김우희 저스트알 상무는 “수요 억제 중심의 정부 정책이 서울·수도권과 달리 집이 남아도는 지방시장에 독약(毒藥) 역할을 하고 있다”며 “일률적 규제를 강행할 경우 지방의 집값 소외감은 더욱 커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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