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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값이 이게 뭐냐” 지방 민심 분노

    입력 : 2006.12.23 17:13 | 수정 : 2006.12.23 17:14

    부산ㆍ대구ㆍ광주 “정책 실패로 아파트값 계속 제자리”… 미분양 아파트 넘쳐나

    지방에선 경기 불황으로 계약금 1% 등 파격 조건을 내건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다.

    지난 12월 11일, 부산의 한 아파트 입주 현장. 재개발된 신규 아파트의 입주가 막 시작된 시점이었다. 낡은 아파트에 살다 새 아파트로 입주하려는 사람들의 표정이 밝지 않았다. 아들을 의대에 보냈다는 50대 가정주부에게 “새 아파트라 좋으시겠네요”라고 묻자 불쾌하다는 듯한 인상을 지었다.


    “팔지 못해가꼬 드가는데 기분이 좋겠어예? 매매가가 분양가 그대로라예. 분양 받고 지금까지 대출이자 낸 게 얼만데, 그라믄 집 사고 손해 보는 거 아닙니꺼. 서울에 있는 언니가 무조건 집은 서울에 사라했는데 그 말 안 들은 게 한이라예. 부부싸움도 엄청시리 했어예.”

    재개발 아파트 조합원이었다는 한 60대 여성은 신규 아파트 인근의 부동산 사무실에 앉아 푸념을 늘어놓았다.

    대구시 대규모 아파트 단지.
    “재개발로 평수가 늘어나믄 그만큼 돈을 더 내야 되는데, 그 돈이 없어가 내는 내 집에 못 드가고 전세를 줬거든예. 전세금 받은 걸로 우리 식구가 또 전세를 얻었고예. 손해만 안 봐도 그냥 팔고 작은 집으로 갈라했는데, 그게 안 되가 서러웁디더. 뉴스 보믄 서울 집값은 다 올랐다고 난리던데. 부산이 우리나라가 맞긴 맞는가 모르겠습니데이.”
    “아파트 이자 때문에 숨이 막힌다”는 한 중년 남성이 큰 소리로 한마디 덧붙였다.
    “부산은 날씨만 좋고, 나머지는 다 더러버예. 하믄 야구(부산 롯데 자이언츠)도 꼴찌 아인가베.”
    지방의 ‘부동산 민심’이 흉흉하다. 서울 등 수도권의 집값은 연일 고공행진을 벌이고 있는 반면, 부산을 비롯한 지방 도시의 경우 물가는 오르는데 집값은 제자리걸음이거나 오히려 내린 곳도 있기 때문이다. 부동산 정보업체 스피드뱅크에 따르면 연초 대비 11월 19일까지 아파트 가격은 서울·경기 지역이 19.55% 올랐으나 지방 5대 광역시의 경우 물가상승률에도 못 미치는 0.41% 오르는 데 그쳤다. 2005년의 경우 연초 대비 11월 19일까지의 아파트값 상승률은 서울·경기 지역이 8.53%, 지방 5대 광역시가 1.73%였다.

    ‘부동산 한파(寒波)’는 부산이 가장 심각하다. 부산의 아파트 가격은 지난해 0.95% 올랐으나, 올해 0.16% 떨어졌다. 부산시 동래구 사직동의 한 부동산업자는 “경기도 일산 사람이 내려와서 3000만원에 아파트를 계약했는데, 며칠 전 계약금을 포기하고 집을 안 사겠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말했다. 부산의 인구는 1995년 385만명으로 최고치를 기록한 이후 2005년 말 현재 360만명으로 계속 감소 추세다. 부산은 전국 대도시 가운데 가장 먼저 고령화 사회로 진입했고, 출산율은 0.88명으로 전국 대도시 가운데 가장 낮다. 부산에서 만난 사람들은 대부분 “부산은 이제 대한민국 제2의 도시라는 명성을 인천에 내준 것이나 다름없다”는 반응을 보였다. ‘부산의 강남’이라는 해운대구조차 미분양 아파트가 넘치는 형편이다.

    1997년부터 2003년까지 부산에 있던 966개의 업체가 다른 지역으로 이전하면서 근로자 2만여명이 부산을 떠났다. 부산시 주택국 관계자는 “10월 말 현재 부산의 미분양 아파트 물량은 7764가구”라며 “7월에는 9000가구를 넘어서기도 했다”고 말했다.

    영산대 부동산연구소 서정렬 교수는 “부산의 인구는 지난 5년간 13만9000여명이 감소했지만, 부산지역 주택보급률은 2005년 기준 101.4%로 일시적 공급 과잉 상태”라고 했다. 서정렬 교수는 “매수세를 감소시키는 정부 정책은 주택 공급이 부족한 수도권에는 맞을지 몰라도 집이 남아도는 지방에는 맞지 않는다”며 “정부가 주택 매입을 규제하는 정책을 지방에서도 펴고 있어 지방의 집값 소외감 악순환을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했다.

    대구 부동산 시장에도 찬바람은 거셌다. 대구시에 따르면 대구의 미분양 아파트는 11월 말 현재 7987가구. 지난 8월에는 7949가구로 지난해에 비해 두 배 이상 급증했다. “깃발만 꽂으면 분양된다”는 대구의 강남 격인 수성구에도 미분양 물량이 쌓여 있는 형편이다.

    대구 수성구의 한 부동산업자는 “대구 사는 사람 대부분이 하는 이야기가 노무현 대통령과 부동산의 싸움에서 노 대통령이 KO패했다는 것이다”라고 말했다. 그는 “노 정권은 서민의 내집 마련은 더 어렵게 만들었고, 비싼 아파트는 가격을 더 올려놓아 부자의 부(富)를 더 늘려놓았다”며 “대구와 서울 가격 차이가 이만큼 나다 보니 대구 사람은 심한 소외감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국민은행이 발표한 11월 주택 가격 동향 자료에 따르면 주택 가격은 전국적으로 3.1%가 상승해 16년 만에 최고 상승률을 기록했고, 서울은 4.8% 상승했다. 그러나 대구는 0.1% 상승에 그쳤다. 대구는 올해에 이어 내년에도 주택 물량이 쏟아질 전망이다.

    대구 수성구의 한 재개발 아파트에 입주한 20대 가정주부 김모(25)씨는 “서울 아파트 가격 폭등 뉴스를 보는데 순간 TV를 뿌사부리고 싶다는 충동을 느낀 적이 있었어예”라고 말했다. 2001년 이후 서울 지역 아파트 가격은 200% 오른 반면 대구 지역은 65% 상승에 그쳐, 서울이 대구보다 3배나 많이 올랐다. 2001년 12월 기준 서울의 아파트 평당 매매 가격은 779만원, 대구는 324만원이었다. 10월 말 현재 서울은 1561만원, 대구는 496만원이다. 두 지역 간 평당 가격차가 455만원에서 1060만원대로 벌어졌다. 경기 부천시의 경우에는 2001년 대구와 비슷한 수준이었으나 지난 10월 말 824만원으로 뛰었다. 김씨는 “반값 아파트라고 나오는데 그 말도 믿을 수가 없다”며 “별의별 정책 다 동원해서도 부동산 가격 못 잡은 사람들이 어떻게 아파트 가격을 반으로 내리겠냐”며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광주(光州) 부동산 시장의 상황도 비슷했다. 스피드뱅크 정여회 호남지사장은 “광주 부동산 시장의 악화는 완벽한 정책의 실패”라고 말했다. 정여회 지사장은 “중고차 값을 잡으려다가 새 차 값이 뛰어버려서, 중고차 값까지 같이 뛴 상태가 지금의 부동산 시장”이라며 “광주 사람은 혹시 낙오자가 되진 않을까 하는 초조감에 무리하게 대출을 받아서라도 새 아파트로 갈아타려는 추세”라고 했다. 광주 서구의 한 부동산업자는 “이제 거지가 쏟아져 나올까 걱정”이라고 말했다.

    광주시에 따르면 10월 말 현재 광주의 아파트 미분양 물량은 9132가구다. 부동산 업자들은 “현실적으로 보면 1만가구를 넘을 수도 있다”며 “유사 이래 이렇게 미분양 물량이 많이 쏟아져 나온 적이 없다”고 말했다. 호남권 분양의 최대 하이라이트란 말까지 들었던 광주 수완지구는 현재 분양률이 고작 25% 정도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여회 지사장은 “정부가 지방 실정에 맞는 정책을 펴지 않으면 서울과 지방의 집값 격차는 더 벌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영산대 서정렬 교수는 “서울과 지방의 주택 가격 양극화는 앞으로도 오랜 기간 지속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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