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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세 안나가고 대출 못갚아… ‘서민주택 경매’ 사상 최고

    입력 : 2005.08.12 18:38 | 수정 : 2005.08.13 06:16

    올 7월까지 연립·다가구 7만가구 넘어가
    월말 부동산대책 나오면 더 악화될 수도

    인천 남동구 구월동 Y빌라(11평)에 사는 전모(여·37)씨는 전 재산이나 다름없는 집을 날릴 처지에 놓였다. 그는 2002년 전셋값 급등 당시 은행돈 5000만원을 빌려 빌라를 샀다. 당시 분양가는 6000만원. 하지만, 올초 식당 일을 그만두면서 3개월 동안 이자를 못내자 은행에서 집을 경매에 부쳤다. 더구나 집이 팔려도 은행 빚이 2000만원쯤 남아 전씨는 ‘졸지’에 거리로 나앉아야 한다. 그는 “경매를 피하려고 집을 내놔도 도대체 팔리지 않았다”면서 “불경기에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규제까지 심해져 최근엔 거들떠 보는 사람도 없었다”고 울먹였다.

    서민 주택 시장이 붕괴 위기를 맞고 있다. 경기 침체 여파로 대출 이자조차 못내 경매로 넘어가는 연립·다세대·빌라 등 이른바 ‘서민 주택’이 급증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가운데 임대 경기마저 얼어붙었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규제 강화로 전셋값이 떨어지고 거래마저 중단된 것이다. 보증금 반환을 둘러싼 분쟁이 늘고, 집이 안빠져 발을 구르는 세입자도 수두룩하다. ‘임대 대란에 경매 대란’이 동시에 진행되면서 서민 주택 시장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다.

    ◆서민주택 경매 건수 사상 최고=올 들어 7월 말까지 전국에서 경매된 서민 주택만 무려 7만여 가구. 2000년 같은 기간(6만2000여 가구)을 뛰어넘는 사상 최고 수준이다. 다세대·연립 경매는 2000년을 고비로 3년간 감소했지만, 작년부터 다시 6만 가구를 넘었다. 이대로 가면 올 한 해 15만 가구 이상이 경매 처분될 전망이다. 그만큼 집을 날리고, 보증금을 떼이는 서민들이 속출하고 있다는 얘기다.
    "급매" "급전세" 홍수 경기 침체와 부동산 가격 하락으로 대출이자를 못 갚아 경매에 부쳐지는 빌라·다세대 주택이 올 들어 사상 최고치를 돌파했다. 사진은 12일 오후 서울 강서구 화곡본동 벅골공원부근의 부동산업소에 붙어있는 수십건의 부동산 매물과 전세물들. /이기원기자 kiwiyi@chosun.com
    서울 은평구 신사동 P빌라 주인 김강희(가명·여·41)씨. 지난 12일 만난 그는 최근 날아들었던 경매통지서를 꺼내 보이며 한숨부터 쉬었다. 이 빌라는 8가구 전체가 통째로 경매에 나왔다. 김씨는 “건축주가 4억원 정도를 빌려 집을 짓고 분양했는데, 거의 안 팔렸다”며 하소연했다. 더구나 입주자들은 경매가 끝나도 손에 쥘 수 있는 돈이 한푼도 없다. 당초 빌라의 감정가격은 6억3300만원이었지만, 살 사람이 없어 최저가격이 4억원까지 떨어졌기 때문이다. 빌라에 걸려있는 채권액만 4억원이 넘어 빚잔치하면 남는 게 없다.

    ◆경기 침체·공급과잉·규제의 ‘3중고’=최근 경매에 나오는 서민주택은 대부분 서울 은평·강서구 등 강북지역과 인천·부천 등지에 몰려있다. 이들 주택은 지난 2000~2002년에 지어졌다. 디지털태인 이영진 부장은 “당시 전셋값이 폭등하자, 값싼 다세대·연립주택 신축 붐이 일어났다”면서 “은행들도 집값의 80~90%까지 저금리 담보대출을 해줘 서민들이 집을 많이 샀다”고 말했다. 결과적으로 공급이 너무 많았던 셈이다.

    그러나 계속된 경기 침체와 규제로 거래가 끊겨 서민 주택 가격이 하락하고, 전셋값도 떨어졌다. 부동산114 김혜현 부장은 “분양 당시와 비교해 반토막난 빌라도 있다”면서 “팔리지 않고, 전세도 안 나가면서 이중고에 시달리는 사람들이 많다”고 말했다.

    ◆다(多)주택자 중과세로 매물 더 늘듯=전세 분쟁도 심각하다. 서울시 임대차분쟁조정상담실에는 요즘에도 하루 평균 80건 이상의 상담 전화가 밀려들고 있다. 대부분 만기가 됐는데도 보증금을 돌려받지 못한 세입자들의 하소연이다. 가정법률상담소 박예순 상담위원은 “심지어 집주인과 세입자가 주먹다짐까지 하는 일도 비일비재하다”고 말했다.

    이달 말 발표될 부동산 종합대책에 다주택자 중과세 정책이 포함되면 값싼 서민주택이 시장에 쏟아져 나와 상황이 더 나빠질 수도 있다. 지지옥션 강은 팀장은 “다주택자에 대한 세금 인상은 결국 비 인기지역과 소형 서민주택을 처분하는 압력이 된다”며 “거래중단→매물증가→가격 하락의 악순환이 일어날 수 있다”고 지적했다. RE멤버스 고종완 대표는 “종합대책이 자칫 서민 잡는 칼이 되어서는 곤란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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