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5.06.14 19:01 | 수정 : 2005.06.14 19:01
'집값 이렇게 풀자' 전문가 좌담
일부 지역의 집값 급등세가 진정되지 않으면서 정책 실패를 비판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정부는 세무조사나 기준시가 인상 등 효과 없는 카드에만 고집하며 뚜렷한 대안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조선일보는 4일 부동산전문가 4명을 초청해, 긴급 좌담회를 열고 현재 ▲주택시장 상황 ▲정부 정책 실패의 원인과 해법에 대해 들어봤다. 좌담회는 본사 편집국 소회의실에서 오전 10시부터 2시간 동안 진행됐다. 박헌주 주택도시연구원장, 조주현 건국대 교수(부동산대학원장), 장성수 주택산업연구원 선임연구위원, 박재룡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이 토론자로 참여했다.
―최근 강남과 분당·용인 등 일부 지역에선 집값이 1주일에 1억원 이상 뛸 정도로 급등세를 보이고 있습니다. 현 부동산 시장을 어떻게 진단할 수 있나요.
▲조주현=한마디로 ‘양극화’ 심화현상입니다. 전반적으로 다 상승하는 것도 아니고, 일부 지역의 일부 평형이 상승세일 뿐입니다. 아파트값이 하락하는 지역도 있지 않습니까. 주택 재고량만 따지다 보니까, 질(質)의 과부족이 생기는 게 문제점입니다. 고급 중대형 주택이 부족하다는 겁니다.
▲박헌주=집값은 1991년 5월 최고점에 달했습니다. 지금도 91년 수준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고 봅니다. 지금 난리가 난 지역은 일부 지역의 중대형 아파트일 뿐입니다. 그나마 호가만 뛰었지 거래가격은 아닙니다. 문제는 정부가 거래마저 중단시키는 정책을 자꾸 내놓으면 호가(呼價)가 실거래가로 연결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장성수=집값은 GDP(국내총생산) 상승률과 비교하면 ‘버블’(bubble·거품)이라고 말하기는 어렵습니다. 강남지역의 고급주택 가격 상승이 저소득층의 주거불안을 초래하는 상황도 아닙니다. 집값 상승세가 전세시장에 영향을 미쳐 전셋값이 오른다면 모르겠지만, 전세시장이나 중소형 주택은 가격이 보합세 내지 하락세입니다.
▲박재룡=(집값 문제는)국지적인 현상이기는 하지만, 가격 상승세가 가파르다는 점을 주목해야 합니다. 분당은 ‘2·17대책’ 직후부터 급등했습니다.
―시장에선 ‘정부 정책이 실패했다’는 지적이 많습니다. 부동산 중개업자들조차 전국적인 동맹 휴업을 벌이며 정책 실패를 비판하고 있습니다.
▲박재룡=강남의 집값 급등이 분당까지 확산된 이유는 판교신도시 실패가 원인입니다. ‘임대주택을 많이 지어야 한다’는 분배주의 발상이 개입된 겁니다. 판교에 2만6000가구를 분양하는데 42%가 임대주택입니다. 분양주택 중 52%는 소형입니다. 중대형은 6000가구 뿐입니다. 분양 주택을 다 합쳐봐야 분당의 4분의1 수준입니다. 이걸로 공급 확대는 어불성설입니다. 지금 일각에서는 ‘판교발 11월 대란설’마저 나오고 있습니다. 판교 분양이 또 다른 집값 상승의 도화선이 될 수 있다는 겁니다.
■ 현재 상황은 중대형 부족… 집값급등 투기 탓으로만 볼 수 없어 주택정책 너무 자주 변질… 극약처방만 고집도 문제
▲박헌주=외환위기 이후 우리나라의 계층간 소득격차가 크게 벌어졌습니다. 상위 10~20% 소득 수준은 과거보다 엄청나게 늘었습니다. 당연히 주택도 ‘명품’을 찾고 있습니다. 그런데 시장에서 명품 주택공급이 안 이뤄졌습니다.
▲장성수=정부는 부동산 문제를 시장의 수급불균형, 과잉 유동성 등으로 보지 않고 있습니다. 어떤 불순한 목적을 가진 특정의 투기집단이 강남의 재건축 단지를 중심으로 작전을 쓰고 있다고 말합니다. 마치 그런 집단이 실제 존재하는 것 같은 착각을 하고 있는데요. 이것은 실체가 없는 허깨비와 싸우는 꼴입니다. 시장의 문제가 어디에 있는 지에 대한 인식의 전환이 시급합니다.
▲조주현=참여정부는 정책 형성 과정에서 목표에 집중한 전략이 나오지 않고, 중간에 자꾸 변질이 되고 있습니다. 뭘 개발한다고 하면 거기에 소형을 넣어야지, 또 가다보면 분양가를 규제해야지 하는 식으로 여론의 향배에 따라 그때그때 바뀌고 있습니다. 지금은 주거의 질에 대한 구체적인 수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탁월한 조망을 갖추거나, 특정시설을 완비한 주택 등입니다. 특히, 커뮤니티(동네) 가치의 중시현상을 주목해야 합니다. 정부는 계층을 믹스(mix)시키려고 하고 있지만, 이건 지금 수요가 돌아가는 방향과는 전혀 맞지 않습니다. 정부 정책은 공급 확대로 가야 하는데, 공급은 인기없는 정책이고 비용도 많이 듭니다. 반면, 수요를 때려잡는 게 단기효과도 좋고, 인기도 얻습니다. 지금 정부는 너무 많은 정책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더구나 극약처방만 쓰고 있지 않습니까.
―바람직한 정부의 정책 방향은 어떤 것입니까. 집값 안정을 위해서는 결국 질좋은 중대형 주택의 공급 확대 아닙니까.
▲조주현=단기적으로 집값을 잡고자 한다면 거래를 활성화시켜야 합니다. 양도세를 대폭 완화해서 매물이 시장에 많이 튀어나오도록 해야 합니다. 장기적인 방안은 역시 공급이 원활하도록 해야 합니다. 수요공급 논리가 완벽하게 작동하려면 토지의 제약을 없애야 합니다. 개발할 땅이 없습니다. 강남에서는 이 문제를 해결하려면 재건축을 과감하게 풀어야 합니다. 주변 신도시 개발도 되도록이면 서울에서 가깝고, 강남에 붙어있는 그린벨트를 풀어서 개발해야 합니다. 고급주택으로 개발하되, 나오는 이익을 철저하게 환수하면 되지 않습니까. 강북의 대규모 뉴타운은 중앙에서 신경 안쓰고 있습니다. 여기에 기반시설도 넣고, 강남에 대응하는 도시구조를 만들어줘야 합니다.
■ 대안은 뭔가 판교나 강남인근 그린벨트 풀어 중대형 더 건설 강북 뉴타운 개발때 교육 등‘주거의 질’ 높여야
▲박헌주=시장 관리는 정책이 아니라 하나의 조치에 불과합니다. 이런 것은 단기적으로 시장을 쿨링시키는 것이지,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닙니다. 거래 문제도 중요합니다. 주택거래허가제까지 검토되고 있는 데, 이것은 시장에 기존 주택 공급을 더욱 줄이는 것이며, 집값 안정 대책과는 앞뒤가 맞지 않습니다. 신도시도 말만 나왔지 구체성이 없습니다. 어디에,언제,어떻게 할 것인지를 빨리 내놔야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고, 불안심리를 없앨 수 있습니다. 기성시가지, 즉 강북지역에 대한 생활편익서비스를 대폭 늘리는 것도 중요합니다.
▲박재룡=과잉 유동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부동자금의 물꼬를 터주는 문제도 고려해야 합니다. 참여정부가 모든 걸 다하려고 하는데, 균형개발도 좋지만, 동시다발적이고 산발적인 계획의 남발을 막아야 땅값과 집값 급등을 막을 수 있습니다. 선택과 집중전략이 필요한 시기입니다.
▲장성수=지역 균형개발정책은 계속 추진해 수도권의 근본적인 땅값 상승을 분산시켜야 합니다. 정부는 서민 주거안정을 위한 국민임대주택 건설에 더욱 몰두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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