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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여름 이사철 실종되나

    입력 : 2004.06.03 08:09 | 수정 : 2004.06.03 11:41

    "안사" "못팔아" 양측 팽팽한 신경전 계속

    겨울 방학 때(12~1월)와 함께 연 중 아파트 매매 거래가 가장 활발한‘여름 이사철’(6~7월)이 올해는 아예 실종될 가능성이 제기되고 있다.

    주택거래 신고제란 초강경 대책이 시행된지 한 달이 지났지만 매수 희망자들은 집값의 추가 하락을 기대하며 여전히 관망하고 있고, 집 주인들은 ‘굳이 더 싸게 팔 필요는 없다’며 매도 호가를 더 이상 떨어뜨리지는 않고 있다. 일선 중개업소들은 “양측이 너무 팽팽하게 맞서 있어, 지금 분위기로는 한 두 달 내에 거래가 다시 살아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올 여름 아파트 거래 공백 사태를 예상하고 있다.


    사실상 개점 휴업에 들어간 서울 강남의 한 중개업소의 모습 /탁상훈 기자


    아파트 매매 거래는 물론, 경기 위축으로 전·월세까지 눈에 띄게 줄면서 이삿짐 센터들도 울상을 짓고 있다. 강남구 대치동 이사서비스365 관계자는 “지난 5월의 경우 작년 같은 기간보다 이사 운반 건수가 30~40% 줄었다”며 “본래 5월 말부터는 여름철 이사 예약도 많이 들어오는데 올해는 영 무소식”이라고 말했다. 서초동 반포동 가나익스프레스측도 “한 달에 10건 이상은 해야 하는데 최근엔 3~4번 하기도 힘든 실정”이라고 말했다.

    ◆ “두고 보겠다”

    2일 일선 중개업소들에 따르면, 서울 강남 지역이나 경기도 분당, 과천 등 지난 3년간 집값이 가장 큰 폭으로 출렁거렸던 지역들에선 요즘 매매 거래가 거의 사라졌다. 이들 지역은 지난 4월 말부터 5월 말에 거쳐 주택거래신고제(주택 구입시 내야하는 취등록세를 실거래가 기준으로 내는 제도, 관련 세금이 이전보다 최고 6배 정도 늘어났음) 대상으로 지정된데 이어 최근 경기 위축 등의 여파로 거래 공백 상태가 계속되고 있다. 이들 지역은 지난 3년간 서울·수도권의 다른 지역 아파트값이나 거래 시장에도 커다란 영향을 주어왔다.

    매매 거래가 없는 1차적인 이유는 집 주인들이 아파트를 이전보다 다소 싼 값에 내놓아도, 매수 희망자들이 좀체로 이를 구입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개포동 제일공인 관계자는 “신고제 시행 직전인 4월에는 막바지 매매 거래가 활발했지만 5월부터는 아예 문의전화조차 뚝 끊겼다”며 “매수 희망자들이 재건축 개발이익 환수제,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重課) 조치 등 정부의 추가 규제책을 염두에 두고 집값이 더 떨어질 것으로 예상하는 것 같다”고 말했다. 강남구는 물론 같은 시기 주택거래신고 지역으로 지정된 송파구, 강동구, 경기도 분당 등의 중개업소 관계자들 역시 기자와의 전화 통화에서 “최근 한 달간은 집을 사겠다는 사람이 없어 개점휴업 상황”이라고 밝혔다.

    매수 희망자들의 관망 움직임은 주택거래신고 지역이 아닌 서초구 등에서도 비슷하게 나타나고 있다. 서초구 반포동 C공인 관계자는 “가령 반포주공 2단지 18평형의 경우 신고제 이전에는 이 일대 중개업소에서 한 달에 20건 정도가 거래됐지만 5월에는 불과 3건만 거래될 정도로 매수세가 확연히 사라졌다”고 설명했다.

    ◆ 우리도 급할게 없다?

    하지만 집 주인쪽에서도 더 이상 매도 호가를 낮추지 않는 등 당초 예상과는 달리 집을 팔기 위해 서두르지 않고 있어 매매 거래는 계속 중단되고 있다.

    집 주인들의 신중한 모습은 이른바 ‘급매물’로 불리는 매도 희망 하한가 매물이 많지 않다는데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매수자가 없을 경우 집 주인들 중에는 하한가에 서둘러 집을 처분하려고 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이번에는 그런 현상이 그렇게 강하지 않다는 것이다.

    가령 개포주공 1단지 15평형은 신고제 시행 직전보다 3000만~4000만원 떨어진 5억5000만~5억6000만원에 하한가 매물이 나오지만, 이 하한가 매물 숫자(중복매물 포함)는 이 일대 중개업소를 통틀어 불과 3~4개에 불과하다. 나머지 30여개의 매물(중복 매물 포함)은 여전히 이전 시세인 5억8000만~6억원에 포진돼있다. 도곡동 월드컵공인 관계자 역시 “은마아파트 등 수천가구 규모의 단지에서도 하한가 매물은 여전히 한 손가락으로 꼽을 정도”라고 설명했다. 지난 5월 말부터 주택거래신고제가 적용된 과천의 경우엔 매매 거래가 완전 실종됐지만 아직 이렇다할 매도 호가 변동은 없는 실정이다.

    ◆ 예전과는 달라진 힘 겨루기

    이 같은 현상은 최근 3년간 여름방학 시즌에 보여줬던 부동산 매매 시장의 흐름과는 크게 대비되는 것이다. 최근 들어 아파트 매매 거래·이사는 자녀들의 교육 문제와 맞물리면서 봄·가을보다는 여름방학과 겨울방학 때 훨씬 활발히 이루어졌다. 지난해와 2002년에는 6~8월에 거래가 급증하면서 오히려 집값 상승을 부추기기까지 했다.

    특히 주택거래신고제라는 정부의 메가톤급 부동산 규제책이 시행된 지 한 달이 넘었음에도 집값 급락 사태가 오지 않는 것이 이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모습이다. 가령 정부의 초강경 부동산 규제책들이 몰렸던 지난 2002년 9월의 ‘9·4조치’나 2003년 9월의 ‘9.5조치’ 직후에는 불과 한 달도 안돼 급격한 하락으로 이어졌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아직까지 그런 조짐은 없으며 앞으로도 쉽게 그럴 것 같지 않다는 게 다수 일선 중개업자들의 설명이다.

    ◆ 이미 ‘어깨’에 팔고 떠났다?

    이 같은 매수·매도 희망자간 힘겨루기 양상이 나타나는 것에 대해 일선 중개업소에선 대부분 “결국 아파트 매매 시장에서 가수요, 즉 아파트를 투자 상품으로 생각해온 투자자들의 상당수가 갖고 있던 매물을 정리하고 떠났기 때문”이라고 분석하고 있다.

    분당의 동성공인 관계자는 “주택거래신고제나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등 정부의 각종 부동산 안정 대책이 예고돼있던 것이니만큼 부동산 과다 보유나 그에 따른 노출이 부담스러운 투자자들은 이미 작년 말과 올 초에 정리를 끝낸 상태”라고 말했다. 서초구의 S 공인 관계자는 “주식 시장에도 ‘무릎에 사서 어깨에 팔란 말이 있지 않냐”며 “아직 1가구 3주택자 등이 일부 남아있긴 하지만, 대부분의 기존 다주택자들은 ‘끝까지 갖고 가겠다’는 집만 남겨 놓고 정리를 끝낸 상황”이라고 말했다.

    결국 “현재의 집 주인들은 직접 거주하는 실수요자거나, 자금 여력이 두터운 사람들이기 때문에 정부 대책이나 경기 변동의 영향 때문에 굳이 서둘러 팔려고 하지 않는 것 같다”(과천 건우공인 관계자)는 것이다.

    ◆ 중개업소는 주 5일 근무, 그래도 여름이 변수

    이처럼 올 여름 거래 공백으로 인한 이사철 실종이 예상되면서 일부 중개업소들은 장기 불황에 대비하기 시작했다. 예컨대 잠실주공 5단지 상가 내 중개업소 30여곳은 지난 5월부터 본래 가게 문을 열던 토요일을 공동 휴무일로 정하는 등 ‘주 5일 근무’를 시작했다. 개포동의 한 중개업소는 급기야 중개수수료 50% 파괴를 외치며 가격 할인 경쟁을 시작했다.

    누구보다도 일선 매매 시장을 잘 알고 있는 현장 중개인들은 그러나 올해 내집 마련을 계획하고 있는 소비자들이라면 올 여름 부동산 거래 시장에 대한 주의를 놓치지 말하야 한다고 조언하고 있다. 서울 강남지역 K중개업소 관계자는 “이미 가수요가 상당히 빠져 나간 만큼 올 여름을 지나면서 발생하는 아파트 가격 변동은 이전과는 달리 향후에도 쉽게 흔들리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고 조언했다.

    과천 건우공인 관계자는 “매수, 매도자간 팽팽한 힘겨루기가 어느 순간 갑작스럽게 한쪽으로 기울 수도 있다”며 “예컨대 만일 이대로 거래 공백이 이어져 올 여름 이사철이 사라진다면 8월 말이나 9월부터는 매수자가 돌연 우위로 올라설 것이지만, 반대로 재건축 사업 승인 등 개별 종목에 대한 호재가 발생하면 매도자에게 주도권이 넘어갈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중개업소 관계자들은 정부가 재건축 추진 단지에 대한 임대 아파트 건설 의무화 등 초강경 규제책을 펼치고 있어 개별 종목 재료도 예전같은 효력을 발휘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공통적으로 내다봤다.

    또 이들은 최근 취업·설비투자·내수 판매 등 전반적인 경제 상황이 좋지 않고 소비 심리가 불안한 점 등은 하락 요인이지만, 오히려 이참에 내집을 마련하자는 실수요자들도 적지 않기 때문에 거래 물량이나 가격 추이를 주의깊게 살펴보라고 조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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