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2003.10.31 13:34 | 수정 : 2003.10.31 13: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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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10.29부동산 대책’의 효과를 놓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이미 시장에서는 효과가 별로 없을 것이라는 전망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확실하게 집값을 떨어뜨리는 방법은 없을까. 어쩌면 간단한 방법이 있을지 모른다. 실수요자들이 담합해서 강남권의 집을 사지 않는 것이다. 집을 사는 사람이 없으면 급하게 집을 팔 사람들이 어쩔 수 없이 가격을 낮출 수 밖에 없고 집값은 급락할 수 밖에 없다.
문제는 실수요자들이 다른 실수요자들이 자신보다 먼저 집을 살까봐 겁을 먹고 빚을 내서라도 집을 사겠다고 나서기 때문이다. 실수요자의 주택구입 동기에는 투기까지는 아니더라도 투자적인 목적이 포함돼 있다.
투기세력에 의해 강남의 집값이 과도하게 오르고 있다지만 그 배경에는 개미군단(실수요자)들이 받쳐주고 있기 때문이다. 실수요자들이 빚을 내서라도 강남의 집값이 더오르기 전에 구입하겠다고 나서기 때문에 강남의 집값이 지속적으로 올랐다.
투기꾼만으로 집값이 오를 수는 없다. 투기꾼들이 다락 같이 가격을 올려 놓아도 이를 사들이는 실수요자들이 있기 때문에 집값은 지속적으로 오르는 것이다. 하지만 무수히 많은 실수요자들이 담합하는 것은 어쩌면 불가능한일인지 모른다. 서로를 불신해서 생기는 일종의 수인의 딜레마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정부가 주택가격이 하락할 것이라는 확신을 실수요자들에게 심어준다면 가능할 것이다. 집값이 내릴 것이라는데 누가 집을 사겠는가. IMF외환위기때의 집값 하락은 무주택자들의 자발적인 담합을 촉발시켜 집값 폭락을 촉발시켰다.
그렇다면 정부는 실수요자에게 집값하락에 대한 확신을 어떻게 줄 것인가. 또는 실수요자들의 강남권 진입을 어떻게 막을 것인가. 정부는 대통령이 좋아하는 주택에 대한 ‘로드맵’을 제시해야 한다.
우선, 강남권보다 더 좋은 도시가 만들어져서 조만간 강남의 집값이 떨어질 것이라는 것을 설득해야 한다. 강남에 수요가 많은 원인이 교육(학원)이라면 강북, 수도권의 교육여건을 개선할 수 있는 대책을 내놓으면 된다. 강남에 오피스가 많기 때문이라면 강북에다 오피스 타운을 조성해주면된다.
둘째, 집을 갖는데 대한 부담을 높여야 한다. 당장 보유세를 높일 수 없다면 정확하게 강남의 6억원짜리 주택을 갖는데 대한 부담이 현재 얼마이고 이것이 매년 얼마씩 오를 것이라는 것을 설명해줘야한다. 셋째. 양도세 인상이라는 카드도 유효하다. 넷째 대출제한이나 금리인상을 통해 내집마련 자체를 제한하는 것이다.
물론 정부도 이런 내용의 대책을 내놓고 있다. 하지만 시장에서는 왜 통하지 않을까. 정부에 대한 불신이 높아져 있는데다 대책의 강도가 약한데 원인이 있다. 여기다가 정부 정책이 이른바 투기꾼이라는 다주택자들을 겨냥한 것이 대부분이라는 것도 문제.
설령, 다주택자들이 정부 정책에 겁을 먹고 집을 내놓는다고 해도 실수요자들이 가격하락을 기회로 삼아 집을 산다면 다시 가격은 오를 수 밖에 없다.
더군다나 다주택자들은 여유자금이 많은데다 다양한 방법을 통해 정부의 대책을 피해나갈 투기기술도 갖고 있다. 차명이나 자녀 명의로 주택을 분산 소유하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현재도 1가구 3주택이나 2주택자들에게는 양도소득세가 중과세 되기 때문에 진짜 투기꾼이라면 당연히 명의를 분산시켜 놓았을 것이다.
때문에 정부의 대책이 다주택자뿐만아니라 1가구 1주택자도 겨냥하지 않을 경우, 큰 효과를 발휘할 수 없다. 정부가 다주택자에 대해서는 10의 패널티를 준다면 1주택자에 대해서도 최소 3~4 정도의 패널티를 줘야만 집값이 떨어질 것이다.
하지만 1주택자들까지 패널티를 준다는 것은 내년 선거를 앞둔 정부로서는 쉽지 않은 선택이 될 것이다. 투기꾼 잡으라고 했더니 서민(실수요자)들을 죽이려고 하느냐는 반발이 거세게 일 것이다.
더군다나 현재 정부 경제팀은 실제 집값이 떨어질 경우, 내수시장을 견인하고 있는 주택경기가 꺼지면서 경기침체가 가속화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이같은 정치적·경제적인 이유때문에 정부의 정책은 한계를 지닐 수 밖에 없다.
(차학봉·부동산 팀장 hbcha@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