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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과학부]산업자원부 장관 인터뷰

      입력 : 2000.02.01 21:58


      ■ 내일(2일·수요일)자 조선일보 주요 경제기사


      ▷금융개혁점검시리즈3. 겸업-대형화의 허실
      ▷경제장관간담회 및 금감위원장 기자회견. 2.8대책. 투신 및
      종금 대책
      ▷오후 2시. 관계장관 기자회견. 설 민심안정대책
      ▷다보스. 손병두 인터뷰
      ▷1월중 무역수지 적자기록

      -이 기사계획은 오전 중 기자들이 각 출입처에서 보내온 것을
      취합한 것으로, 대부분 다음날 아침 신문에 반영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일부 예정기사는 지면에 반영되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 이동한 dhlee@chosun.com *)



      ■ 취재 뒷이야기:산업자원부 장관 인터뷰 내용 전문


      어제 신문 경제면에 소개됐습니다만 김영호 산업자원부
      장관과의 인터뷰 내용 전문을 다시 올립니다. 제한된 지면에
      많은 내용을 담으려다보니 논리적 비약도 약간 있었고, 자신의
      생각이 충분히 표현되지 못한 부분이 있는 것 같다는 김영호
      장관의 감상도 있었습니다. 이동한 기자는 산업자원부와
      현대-대우그룹, 중공업-조선-기계업종을 맡고 있습니다.

      김영호 산업자원부 장관은 취임이후 몇 차례 호텔에서 식사를
      해봤더니 영 불편하다며 가능하면 호텔식사를 지양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외국인들과의 만남 등 필요할 때를 제외하고는
      호텔식사를 피해겠다는 얘기였습니다. 호텔업자들이 들으면 좀
      섭섭하겠지요. 이번(지난28일)에 있었던 김 장관과의 인터뷰
      장소를 한식집으로 정했던 것도 장관의 취향에 따른
      것이었습니다.

      장관 단골인 인사동의 한 음식점이었는데 보기에 음식은
      괜찮은 듯 했습니다. 먹어보고 나서 무슨 소리냐고 하시겠지만
      저는 인터뷰 내용을 받아 적느라고 겨우 허기만 채웠기 때문에
      음식 맛 감상할 겨를은 없었습니다.

      점심시간을 인터뷰시간으로 잡은 것도 장관의 빠듯한 일정
      탓이었습니다. 장관은 정말로 바쁘다는 말을 연발했습니다.

      -장관에 취임한지 보름이 지났습니다. 35년을 대학에서
      있다가 관료조직에 들어와 본 감상은 어떻습니까.

      『바쁩니다. 몸이 약하면 안됩니다. 몸의 한계와 싸웁니다.
      차만 타면 자고?. 당초에는 오늘 짐 정리를 할 겸해서 대구
      집에 다녀오려 했는데 친한 장관 한 명이 오해가 많은
      사회이니 대구부터 가지 말고 다른 곳을 들렀다 가라고 해서?.
      가야할 곳도 못 갑니다.』

      -신문에 글도 많이 쓰고 학자로 널리 알려져 있긴 하지만
      장관 발탁을 의외로 여기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배경이
      무엇이라 보십니까.

      『정치인과는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대통령과 주변 사람
      중에도 없습니다. 경력에는 94년부터 「아태재단
      비상임연구원」으로 있었던 것으로 돼 있는데, 직접 간여하지
      않았고, 이름을 빌려줬던 기억도 없습니다. 제 2건국위 위원
      모임에는 한번 간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산업기술정책심의위원장을 4년 했고,
      국가과학기술자문위에서 산업기술 쪽을 맡았습니다. 제가
      「테크노파크」사업을 전담해 밀어 부쳤습니다.』

      -역대 장관 중 대학교수 출신들이 꽤 있었지만, 관료조직을
      장악하지 못하고 겉도는 경우가 많았는데요.

      『2주일간 업무와 조직파악에 중점을 뒀습니다. 과거에 이처럼
      연구한 적이 없을 만큼 열심히 했습니다. 다 인간사회의 일
      아닙니까. 언론계와도 접촉이 많았고, 공정위 자문위원,
      경북21세기위원장, 대구시정자문위원도 해봤습니다. 「순수한
      상아탑주의」는 아니었습니다. 산자부 직원 사진도 수십 번씩
      넘겨봤고, 이제는 과장까지는 얼굴을 압니다.』(김 장관은
      그러나 동석한 산자부 외신대변인을 못 알아보고 누구냐고
      묻기도 했다.)

      -지난해 대구라운드를 주도했는데요.

      『나는 「시민사회론」을 좋아합니다. 경제학을 하면서
      그쪽으로 끌고 가는 일이 적지만, 나는 글을 쓸 때 시민사회의
      성숙을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개혁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외자주도, 관료주도형 개혁이 아니라 시민주도형 개혁이 돼야
      합니다. 국제금융질서도 시민참가형 질서여야 합니다.

      대구라운드는 IMF위기와 관련 채무자들만 일방적으로 책임을
      질 수 없다는 인식에서 출발했습니다. 부분적으로는 금모으기
      운동과도 연결되는 것인데 과거 「국채보상운동」의
      발상지였던 대구에서 국제적인 행사를 가진 것입니다.
      국내-국제문제가 서로 연결된 상황에서 시민참가형
      국제금융질서로 가자는 것이었고, 세계 시민운동가중
      핵심인물들이 모여 회의를 했습니다. 대구라운드에서
      「경제정의를 위한 세계망」(Global network for economic
      justice)이라는 새로운 기구를 결성했습니다.

      장관으로서 기본적인 철학을 갖고 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때가 좋지 않습니다. 시민단체의 정치인 낙천운동 같이
      정치적으로 오해받고 싶지 않아요.
      기술의 연구개발은 평가가 가장 중요합니다. 평가가 제대로
      안되면 서로 성공했다고 해 갈라먹고 맙니다. 여기에
      브레이크를 걸려면 평가제도를 개선해야 합니다. 평가에
      시민사회를 참여시키고 그 결과를 공개해야 합니다.
      시민사회에 이를 개방해야 기술개발을 정상화시킬 수
      있습니다.』

      -시민운동이 대구라운드나 WTO 시애틀회의에서 나타났듯
      개방과 글로벌화에 대해 반대하는 경향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시장의 논리가 신자유주의이며, 무역에서는 WTO, 금융에서는
      IMF입니다. 「시장의 논리의 세계화」를 추구하는 것입니다.
      시애틀 회의는 이것과 「시민의 논리의 세계화」가 부딪힌
      것으로 봅니다. 그 타협의 형태와 과정이 21세기가 될
      것입니다.

      21세기의 시작에 대해 여러 관점이 있습니다.
      베를린장벽붕괴로부터 보는 관점, 인터넷 시작으로 부터라는
      관점, 시민운동의 시작으로부터라는 관점 등입니다. 지금은
      시장과 시민사회가 연결 또는 부딪히는 「화(和)」와
      「쟁(爭)」의 시대입니다. 대구라운드가 바로 그런
      입장이었습니다.』

      -시민사회의 논리는 분배와 참여를 요구, 어쩔 수 없이
      시장의 논리와 부딪히게 마련 아닌가요.

      『빈부격차 등 중간층을 허용하지 않는 시장의 논리에 대한
      저항이라고 봅니다. DJ가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얘기했는데 나는 「시장과 시민의 논리의
      병행발전」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다.』

      -평소 국제투기자본을 규제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한국정부가 외환위기를 넘기기 위해
      IMF 처방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어려운 질문인데요. 장관되기 전에 문제가 있다고 썼습니다.
      DJ노믹스에 DJ가 없다고 떠들었지요. 지금은 내 생각이
      옳았는지 글렀는지를 따져보고 있는 중입니다. 권력을 좇아
      생각을 바꾸는 것은 아닙니다.』

      -재벌개혁에 대한 평소 소신은 무엇입니까. 혹자는
      기업지배구조 개선은 필요하지만 선단식 경영의 장점을
      살리자는 얘기도 하고 있는데요.

      『나는 재벌비판을 가장 많이 한 사람 중 한 명입니다.
      대기업을 말하는게 아닙니다. 재벌과 대기업은 다릅니다.
      소유와 경영을 분리해야 합니다. 문어발식 경영도 안
      맞습니다. 어느 시기까지는 불가피했으나 지금은 경쟁력이
      없어요. 시민사회의 성장과 안 맞습니다.

      경쟁력 강화를 위해 대기업체제는 필요합니다. 생존을 위해
      선택과 집중은 필요합니다. 중소기업과 대기업의 관계가
      자유로와져야 합니다. 6개월 짜리 어음을 끊어주는 것은 재벌
      쪽에서 일방적으로 정하는 가격이지요.
      원시자본축적과정에서는 불가피했는지 모르나 이제는 졸업해야
      합니다. 스스로 마르크시스트 같은 반체제파을 제외하고는
      재벌개혁을 가장 많이 강조했다고 생각합니다.』

      -벤처와 코스닥 붐이 일면서 전통적인 제조업과 갈등의
      분위기가 적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난번 열린 벤처대회는 중요한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제조업이 중심이 돼야 합니다. 일자리창출도 마찬가지이고,
      금융재정정책, 예컨대 환율도 제조업에서 생각해야 합니다.
      과학기술도 생산현장에서 연결돼야합니다. 이 연결도를
      높이는데 장관으로서 1차적 역할을 다할 것입니다.
      IT혁명은 1차적으로 정보통신사업과 소프트웨어에서
      일어났지만 제조업과 연결돼야, 지식기반 제조업으로
      발전시켜야 합니다. 취임일성으로 얘기했듯이 「제조의
      르네상스」가 올 것입니다.

      DJ가 벤처대회에서 「쌍두마차」로 가야한다는 얘기를 했는데
      중요한 얘기입니다. IT혁명과 직접 초고속정보통신망을
      구축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제조업과 연결돼야 합니다. 기존
      중소기업과 무관하게 벤처가 생기는 것도 곤란합니다. 기존
      중소기업의 이노베이션이 벤처로 발전하는 선순환구조가
      이뤄져야 「지속가능한 벤처」가 가능하며, 「뉴
      다이내미즘」을 만들수 있습니다.』

      -벤처육성과 이노베이션 촉진을 말씀하셨는데 부작용도 적지
      않습니다. 한탕하고 코스닥에서 돈벌어 달아나는 이들도
      생기고 있습니다.

      『바로 그 주무부서가 산자부입니다. 우리 나라에 벤처는
      5000개입니다. 믿어지지 않을 정도로 많습니다. 정부가
      돈대주고, 거품도 있고, 투기도 있다는 게 사실입니다.
      그러나 벤처 쪽의 열의, 돈을 번다는 현실과 의지, 폭발력은
      살려야 합니다. 고등고시 공부하던 사람들이 벤처로 몰리고
      2조원이 넘는 지하자금이 벤처로 나오고 있습니다.

      재벌기업에서도 똑똑한 젊은이들이 벤처로 몰립니다.
      이를 뒷받침 하는 게 코스닥입니다. 미래가치와 가능성을 보는
      것입니다. 코스닥을 뒷받침하면 된다고 봅니다. 문제점도
      많지만 섣불리 손대지 말고 큰 흐름을 살려야 합니다.
      부작용보다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정부만으로는 안됩니다. 한국경제의 돌파구라는 판단이 서면
      밀어주세요. 벤처와 중소기업과의 연결을 강화하고, 나중에
      대기업에서 이를 M&A해 사주고, 그 돈으로 다른 벤처를 하고?.
      고시공부 같은 지위지향적 문화까지 바꿀 수 있다고 봅니다.』

      -산자부내에 전자상거래과가 신설되는 등 전자상거래 업무
      비중이 커지고 있습니다.

      『전자상거래는 물류, 수송의 문제입니다. 또한 얼굴을 보지
      않고 거래해 신뢰가 절대적입니다. 한국을 신뢰사회로 만드는
      돌파구가 될 수 있습니다.』

      -산자부의 주력업무중 하나는 국내 부품소재산업의
      육성입니다.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인터넷 거래와
      제조업 육성은 안 들어맞는 부분도 있습니다. 부품소재산업을
      육성하더라도 과거처럼 정부가 국산화율을 정해 이를
      강제하기보다는 글로벌 아웃소싱이라는 대세하에서의 경쟁력
      강화에 초점을 맞출 생각입니다.』

      -1월중 무역수지 적자가 예상되는 등 올해 여건이 좋지
      않습니다. 무역수지 정책에 대한 생각은.

      『저는 통상국가론자입니다. 한국은 통상국가여야 합니다.
      우리역사에서 가장 잘못된 것은 고려 때까지 통상국가였다고
      조선 때부터 농업국가로 전락한 것입니다. 신채호 선생은
      조선천년간 제일 대사건으로 「묘청의 난」 실패를 들었는데
      저는 통상국가 포기를 가장 큰 실수로 꼽습니다. 안 그랬으면
      동북아의 이탈리아 역할을 하는 국가가 됐을 것입니다.

      고려시대만 해도 경쟁력 있는 세계적 상품이 5∼6개
      있었습니다. 고려청자, 고려인삼, 고려연(벼루), 고려선(부채)
      등. 다산을 좋아하는 것도 통상국가론자이기 때문입니다.
      수출경쟁력 강화는 중요합니다. 그러나 올 무역수지목표인
      120억 달러만 지속되면 괜찮다고 봅니다. 더 이상 늘면
      통상압력을 받게 됩니다. 100억 달러만 유지되면 지속 가능한
      수준이라고 봅니다.』

      -일부 민간경제학자들은 2001년에 무역수지가 적자로 돌아 설
      것이란 전망도 내놓고 있는데요.

      『산업기술정책을 펴지 않으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돈이
      벤처로 가도록 해야 합니다. 정부가 중요한 역할을 해야 하며
      국가가 저를 부른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대우자동차의 매각작업이 진행중이며, 산업정책적인 고려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외국업체에 경영권을
      넘기고도 국내 자동차산업의 붕괴를 막을 수 있는 장치들이
      있다고 봅니까.

      『현재 다른 부처에서 일을 하고 있습니다. 아직 나설 때가
      아니라고 봅니다.』

      -한전과 한국중공업 민영화 등 시급한 현안들이 많습니다.
      공기업 민영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합니까.

      『이제 보름됐습니다. 정부가 정한 큰 원칙을 유지한다는
      정도만 말씀드리지요.』

      -동북아지역 협력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십니까.

      『일본 학자가 「기러기모델」(雁行型 성장모델) 얘기를 많이
      합니다. 일본이 선두에 서서 산업구조가 고도화됨에 따라
      단계적으로 산업이 한국과 대만, 그리고 동남아 국가들로
      이전되면서 경제발전이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는 「가마우지」모델이라고 합니다. 가마우지란 오리
      비슷한 것인데 목에다 줄을 걸어 물에 풀어놓습니다.
      가마우지가 물고기를 잡으면 줄을 잡아채 물고기를 삼키지
      못하게 해서 고기를 잡는 방식입니다.

      동북아지역 협력중 한일간 협력은 가시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일본에서도 결국 이웃 없이는 곤란하며 가까운
      이웃이 한국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것입니다. 다른
      동남아지역은 아직 기술갭이 큽니다. 한일간 문화교류도
      활발하고 일본인들은 최근 가장 관계 좋은 나라로 한국을
      꼽습니다. 한일 자유무역지대를 만들자, 일단 대만을 넣고,
      중국도 나중에 참여시키자는 얘기가 가시권에 들어오고
      있습니다.』

      -미국경제의 경착륙 또는 연착륙, 일본경제의 회복 등에 대해
      일본에서는 어떻게 봅니까.

      『일본 경제는 출구가 안 보인다는 인식이 큽니다. 경기는
      상승할 것이나 워낙 골짜기가 깊어 크게 기대할 만한 것은
      없다는 것이다. 새 패러다임이 안 보인다는 게 전체적인
      분위기입니다.』

      -독자적인 정보화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하고 있는데.

      『휴대폰으로 인터넷이 가능하게 될 것입니다. 고령의 딸기도
      전자상거래 되고 있습니다. 농민들은 휴대폰을 모두 갖고
      있는데 현재는 커피배달에 쓰고 있지요.
      독자적 정보화전략을 찾아야 합니다. 제조업과 IT를 결합해야
      합니다.

      IT와 FT(금융기술)의 결합에 이어 IT와 BT(생명공학기술)의
      결합이 붐입니다. 생명공학관련 특허는 수직상승하고 있으며,
      미국 일본 양쪽 모두 이 분야에서 벤처붐을 이룰 것입니다.
      초고속정보통신망을 까는 것은 기초이고, 우리 나름대로의
      전략이 필요합니다.』

      -벤처의 토양은 미국식 개방과 시장이라는 미국 모델적
      성격이 강하지 않습니까.

      『벤처는 시민기업(civic entreprise)으로 변신해야 합니다.
      손봉호 교수의 유산 안 물려주기 운동도 좋습니다. 사람을
      모아서 저도 가입할 생각입니다. 뉴질랜드에 가보니
      유산상속을 생각도 못하더군요. 교회나 대학 과학재단 등에
      모두 기부하고, 자식들은 다시 벤처인생을 삽니다.
      상속세를 70∼80%로 높여 물려줄 생각을 말도록 해야 합니다.
      이 돈을 과학기술, 문화, 문학에 투자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저는 시민참여형 행정을 펼칠 생각입니다. 에너지정책도
      마찬가지입니다. 1인당 석유소비량이 우리처럼 많은 나라가
      없습니다. 에너지가격 상승시기는 소비절약운동을 펼치고
      대체에너지를 개발하는 절호의 기회라고 봅니다. 정부만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시민사회의 적극적인 참여가 필요합니다.
      시민정부(civic gov’t)가 우리가 가야할 방향입니다.』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시스템을 구축하는 데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안되면 그만두는 것이죠. 저는 대통령을 만난
      자리에서 왜 불렀는지 모르나 학교에서 주장하던 개혁을
      하라는 뜻으로 받아들인다고 말했습니다. 처음 입각통보를
      받고 얼싸좋다 달려오지는 않았습니다. 학자적 품위는
      지켰지요.
      장관 발령장을 받던 날 돌아와 바로 사직서를 써놓았습니다.
      누가 트집을 잡으면 ?.』

      『대구상고를 간 것은 공부를 못했기 때문이에요. 건방을 떨어
      그때부터 농촌계몽운동을 한다고 돌아다녔지요. 경북대에
      진학한 것 만해도 운이 좋았습니다.

      학문을 시작한 것은 공군장교로 군복무 중이었습니다.
      공사교관에 임명된 뒤 퇴근도 않고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이후
      서울대 연고대 등에 강사로 나가다 박사학위가 없다는 이유로
      교수임명을 못 받아 일본에서 박사를 땄고, 한국인으로는
      처음으로 일본 오사카(大阪) 시립대 국제경제학 교수로
      임명됐습니다. 그때도 정말 열심히 공부했지요. 일본학자들도
      별 관심을 기울이지 않다가 『동아시아 공업화와
      세계자본주의』라는 책을 내면서 유명해졌습니다. 일본 내
      60여 개 대학에서 교재로 사용됐습니다. 그 뒤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동경대 교수가 됐고, 경북대로 돌아와 학장도 하고
      대학원장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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