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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년특집] 올해 인물--수산시장 젓갈할머니 류양선씨

      입력 : 1998.12.23 13:38




      ## 누더기입고 젓갈팔아 장학금 15년…"줘버릇하면 자꾸 주는벱" ##.

      ♧ '훈풍만리 덕불고'. 따뜻한 바람은 멀리 가고 덕있는 사람은 외롭
      지 않다. 주간조선의 '98 올해의 인물' 선정에서 쟁쟁한 유명 인사들을
      제치고 6위에 오른 류양선(65) 할머니는 순위와는 상관없는 '베스트 중
      의 베스트'다.

      서울 노량진 수산시장 동쪽 끝, 댓평 남짓 가게 한쪽에 그이가 있
      다. 새벽 4시부터 밤 8시까지, 하루 16시간씩 일해오기를 25년. 자식 못
      낳는다고 일찌감치 쫓겨나 억척으로 혼자 살아왔다. 그렇게 맨손으로 새
      우젓 함지를 들고 다니며 벌어, 모두 보육원과 양로원, 대학들에 보냈다.

      가게를 찾아갔을 때 류씨는 마침 저녁을 드는 참이었다. 반찬을 긴
      의자 한쪽에 놓고 국그릇에 밥을 말아 놓았다. "야, 된장국 참 맛있
      다. 이번에 수능 400점 맞은 애 있지? 이 된장국이 딱 400점이네." 입심
      좋게 한마디 하면서 숟가락을 떴다.

      "할머니, 오징어젓 맛 좀 봐도 돼요?" 30대 주부가 젓갈을 사러왔다
      가 말을 붙였다. "먹고 가면 돈 안받아, 들고 가면 돈 받지." 술질을 하
      면서도 말을 척척 받아넘긴다.

      류씨에겐 조선일보 기자들이 뽑은 올해의 인물에 꼽힌 게 그리 들뜨
      는 소식도 아닌 듯 했다. "뭐, 젓갈 팔아서 남들 도와줬다고 뽑았겠
      지. 상금도 준대?" 류씨는 "상금이나 주려면 뽑아줘요. 애들 책이나 더
      보내주게" 하며 웃었다.

      83년 서울 화랑보육원(현 이삭의 집)에 책을 보내면서 시작된 류씨의
      '책보내기'는 올해로 15년이 됐다. 당시 새우젓 세 드럼 판돈 90만원을
      털어 책을 사서 보냈다 한다. 연탄 한장에 15원하던 시절이다. 그 뒤로
      관공서사회복지과에 물어 전국 각지 학교와 보육원, 양로원에 책과 새우
      젓을 보내기 시작했다.

      그간 얼마나 많은 책을 보냈는지 그이도 모른다. 출판사에서 보내온
      배달확인증으로 어림짐작한 액수가 3억원쯤. 정기적으로 보내는 곳은 없
      다. 그저 TV 보다가 불쌍한 아이들을 보면 바로 출판사에 전화를 한
      다.그때면 새우젓처럼 짜게 번 돈을 몇백, 몇천만원씩 듬뿍듬뿍 쓴다.

      지난 3월에는 경기 광명에 있는 10억원짜리 4층 건물과 땅을 고향인
      충남 서산 한서대에 기증했다. 새우젓 장사로 돈을 벌기 시작했을 때 사
      둔작은 가게를 불리고 불려 장만한 '전 재산'이었다. 건국대 학생 7명에
      게 89년부터 장학금을 줘, 이 대학은 지난 학기 '류양선 장학금'을 만들
      었다.

      "남들한테 갖다 바치는 게 갖고 있는 것보다 더 좋잖아. 갖고 있다고
      하루에 밥 열끼 먹을 수 있남. 줘 버릇하면 자꾸 주고 싶은 벱이여.".

      정작 자기 행색은 초라하기 그지 없다. 3년 신었다는 털 고무신은 뒷
      축이 물 안샐 만큼만 남았고, 발뒷꿈치 닿는 곳은 너덜너덜하다. 노랑
      셔츠에 몸뻬바지, 돈 넣는 앞치마는 청바지천으로 덕지덕지 기웠다. 그
      렇게입고 TV 방송국에도 다니고, 서울시장 만나러도 간다. "한복도 있고
      양장도 있긴있어. 비렁이(거지)도 선볼 일 있으니까." 그러나 그이가 차
      려입은 걸 본사람은 거의 없다.

      시장에서 두 정류장 떨어진 34평형 전세아파트는 마치 이삿짐 정리가
      안끝난 집 같았다. 마루에는 시장바닥에서 주워온 포장용 끈을 잘게 잘
      라 묶어놓은 더미들, 보육원에 보낼 책과 비디오 테이프 상자들이 가득
      했다. 창문엔 커튼도 없고, 싱크대 주변에는 변변한 그릇 하나 없었다.

      시계는 유독 많았다. 마루에 벽시계가 2개, 탁상시계가 10개도 넘었
      다. 자세히 훑어보니 모두 '○○대학교', '○○출판사', '○○시장'이
      준 기념품들이다. 책장 절반 이상을 덮은 건 갖가지 감사패. 83년부터
      최근까지, 어림셈으로 40개쯤 됐다. 출판사 사장이 선물해 줬다는 TV와
      방송 프로그램에서 '구두쇠왕'으로 뽑혀 받은 소형 오디오가 그나마 번
      듯했다.

      화장실도 갖춘 게 없기는 마찬가지. 칫솔은 모 끝이 다 닳았고, 치약
      대신 "1000원어치면 3년 쓴다"는 천일염 통이 한쪽에 있다. 비누는 손가
      락한마디 만큼 남았다. 화장지가 있어야 할 자리엔 작년치 일일 달력 몇
      장이 놓여있었다.

      한쪽에 빨아 개켜놓은 옷들은 하나같이 '누더기'였다. 겉옷 속옷 할
      것 없이 닳고 찢어진 것을 깨끗이 빨아 입는다. "이런 걸 어떻게 입느냐"
      고 물으니, "속에 입을 건데 뭐 어때" 한다. 찢어진 겉옷은 어떻게 입느
      냐고 하니까, "속에 메리야스 입는데 왜 못 입어" 하는 말이 돌아왔다.

      "음식도 하나 안 남기고 다 드세요. 물도 한 방울 버리지 못하는 분
      이지요. 생선뼈도 재탕 삼탕 끓여서 녹녹해지면 다 씹어서 드실 정도니
      까요." 지난 2월부터 가게 일을 돕는 조카 류성조(38·여)씨 말이다.

      류씨가 책을 보내고 장학금을 주는 건 배우지 못한 게 한이 돼서란
      다. 일제 때 보통학교 3학년까지 다닌 뒤, 해방 후 "여자가 배워서 뭘
      하느냐"는 아버지 몰래 6학년까지 다닌 게 학력의 전부다. 그가 보내주
      는 책에는 '죽는 날까지 책을 가까이 하라'는 말이 적혔다.

      "5학년 때 담임선생님이 공부 잘한다고 중학교로 월반하라고 했었어
      요. 그런데 아버지 때문에 못했지. 나중에 '왜 그때 아버지를 설득 안해
      주셨느냐'고 따지려고 담임선생님을 찾았더니, 돌아가셨더구만.".

      대문 앞에 버리고 간 아이를 주워 키운 딸(24)도 사연을 보탠다. 남
      편과 헤어진 뒤 애지중지 키워오던 딸은 초등학교 4학년 때 교통사고를
      당해 몸이 불편하다. 이때문인지 류씨는 '정신 말짱할 때' 모든 재산을
      남에게 주고 떠날 생각이다.

      그런 류씨는 요즘 '젊은 것들'에게 불만이 많다. 매스컴에 보도되고
      나면'도와달라'는 편지가 하루 10통 넘게 오는데, 다들 거저 먹겠다는
      심산이라는 거다.

      "남편은 실직하고 자기는 자살할 거래요. 그리고는 100만원만 달라는
      거예요. 자살할 용기 있으면 왜 노력을 못해요. 우리 고모가 어떻게 번
      돈인데. 하루 1만원만 벌면, 모으지는 못해도 먹고는 살죠." 조카 성조
      씨가 자못 흥분해 말했다. "도둑질, 서방질만 빼고 다 하랬어." 류씨가
      한마디 거들었다.

      하루는 30대 중반 남자가 장사 끝물에 찾아왔다. "좋은 일 많이 하신
      다"고 말을 꺼낸 남자는 잠시 후 "사업에 실패했는데 좀 도와달라"며 손
      을 벌렸다. "소리를 빽 질렀지. '젊은 놈이 돈 벌어서 늙은이 보태주지
      못할 망정 늙은이한테 돈을 달래?' 하고 말이야." 류씨는 "귀고리에 뾰
      족구두 신고와서 돈 달라는 여자, 집에까지 쫓아와서 겁주는 사람… 별
      놈다 있다"고 했다.

      류씨를 즐겁게 하는 건 책을 받고 답장하는 학생들이다. 학교별로 수
      십통씩 모아 보내온 편지를 가게 한쪽에 두고 뜯어보는 게 낙이란다. 읽
      은 편지 겉봉엔 '젓갈 사러 온다는 글', '본받고 싶다는 글' 식으로 감
      상을 써두었다. 그런 편지가 2000통 넘게 모였다.

      "이 아이들 책 보내려면 돈 더 벌어야 해. 돈으로 지구를 다 덮어도
      모자라. 나는 하루 세끼 먹을 만큼만 있으면 되고." 류씨 소망은 하버드
      보다 좋은 대학을 고향에 세우는 것과, 농민들을 위한 저장고를 지어주
      는 일이다.

      지난 봄 10억원짜리 부동산을 내놓은 뒤로는 책 보내기가 수월찮다.

      한달800만원씩 나오던 세가 뚝 끊겼기 때문이다. 그러면서도 "23일엔 한
      국복지재단에 책을 들고 갈 생각"이라고 했다. 경기도에 조금 남은 땅
      도 곧 처분해 기증할 계획이다.

      "나라가 이렇게 된 게 기업들이 외국서 빚 얻어다 못 갚아서라매? 나
      도 새우젓 사느라 빚 얻으면, 팔리는 대로 빚부터 갚어. 그리고 남는 돈
      으로 먹고 사는 거지. 그런데 왜 빚 안 갚고 딴 짓 하다가 나라를 팔아
      먹어?" 나라 경제를 일갈하는 류씨 목청이 천장 높은 수산시장 구내를
      쩌렁쩌렁 울렸다.

      류씨를 '올해의 인물' 1위로 꼽은 한 조선일보 기자는 그 이유를 '엉
      망인사회에 그래도 희망이 있음을 보여준 분이기 때문'이라고 달았다.

      <* 한현우 주간부기자·hwhan@chosun.co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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