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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 생애] 제6부 쿠데타 연습-이승만제거계획(3) - (184)

      입력 : 1998.05.17 19:17





      ## 박, 군의 정치중립 강조한 훈령 기초 ##.

      이용문이 선우종원에게 한 말 "참모총장도 알고 있고 밴 플리트
      사령관도 우리 거사계획을 묵인하고 있다"는 내용은 대체로 사실임이
      확인되고 있다. 주한미국대사 무초는 반 이승만 계열 정치인들을 상
      대로, 밴 플리트 8군 사령관은 한국군 수뇌부를 상대로 하여 각각 이
      승만 낙선, 장면 당선 공작을 추진하고 있었다. 밴 플리트는 이종찬
      육군참모총장에게 미국 측의 '반 이승만 태도'를 암시하고 한국군이
      이승만에 의해서 정치적으로 이용되는 것을 저지하려고 했다. 이종찬
      은 '군이 정치에 동원되어선 안된다'는 선으로 입장을 정리하고 있었
      으나 이용문 작전국장은 한 걸음 더 나아가서 이번 기회를 활용하여
      이승만을 제거하는 쿠데타 쪽으로 확대시키려고 했다. 박정희 차장은
      주도적 역할을 할 입장은 아니었지만 이용문의 충실한 보좌관이었다.


      사진설명 :
      군수뇌부. 앞줄 왼쪽부터 작전참모부장 이준식준장, 이종찬 육군참모총장, 이기붕
      국방장관, 유재흥 참모차장, 양국진 군수참모부장.



      박정희 차장의 직속부하였던 이근양(육군소장 예편, 대한석탄공사
      총재역임) 편제과장은 이용문, 박정희와 함께 술을 마신적이 있었다.
      취기가 돌자 이, 두 사람은 농담처럼 이상한 화제를 꺼내는 것이었다.

      2개 대대만 부산으로 보내면 정권을 간단하게 뒤엎을 수 있다는
      내용이었다. 이 과장이 "군인이 무슨 쿠데타 이야기를 하십니까"라고
      참견을 하니 두 사람은 "아니, 농담이야"라고 하면서 호탕하게 웃었
      다. 임시수도 부산에서는 개헌문제로 친 이승만 시위와 야당의 반대,
      미국 측의 음모설 등 정국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었다. 밴 플리트 8
      군사령관은 이종찬 총장이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상자째 들고 자주
      육본을 찾아와서 밀담을 나누고 있었다. 유진산 의원등 야당 측에서
      도 사람을 보냈다.

      이종찬 총장이 임명권자인 이승만의 병력동원 명령을 따를 것인가,
      작전지휘권자인 밴 플리트의 지시를 따를 것인가가 문제였다. 그때
      부산엔 전투병력이 없었다. 원용덕 헌병사령관이 지휘하는 소수의 헌
      병들이 있을 뿐이었다. 이승만은 부산에 계엄령을 펼 경우 동원할 부
      대를 수중에 갖고 있질 않으니 답답했다. 어느 날 신태영 국방장관이
      전화를 걸어 총장을 찾다가 없으니 이용문 작전국장을 바꿔달라고 했
      다.

      '병력을 차출하여 부산으로 보내 원용덕 헌병사령관의 지휘를 받
      게 하라'는 전화지시를 받고 난 이용문은 단호하게 말했다.

      "제가 작전국장으로 있는 한 절대로 파병은 못합니다. 전쟁중인데
      병력을 빼내 정치적으로 사용하는 것은 이적행위입니다.".

      그리고는 전화기를 "땅!" 내려놓았다. 5월25일 이승만 정부는 부
      산, 경남, 전남-북 일원에 비상계엄령을 선포하고 계엄사령관에 이종
      찬 육군참모총장, 영남지구 계엄사령관에 원용덕 육군소장을 임명했
      다. 부산 근교의 금정산에 공비가 출몰한 것이 계엄사유였다. 고 서
      민호 의원은 이 사건이 김창룡 육군특무대장에 의해 날조된 것이란
      주장을 생전에 한 적이 있다. 중죄수들을 불러내 공비로 위장시키고
      사살했다는 주장이었다. 이에 대해서 이범석 당시 내무장관은 회고
      록에서 '재야세력의 한 중진이 미국 대사관에 찾아가서 공비사건이
      조작된 것이라고 일러바쳤는데 나는 지금도 그를 인간으로 대접하지
      않고 있다'면서 조작설을 부인했다.

      4월 26일 아침 계엄군은 부산에 있는 임시국회의사당으로 출근하
      던 국회의원들이 탄 통근버스가 검문에 불응한다고 국회의원들을 태
      운채 헌병대로 끌고 갔다. 끌려간 의원들 가운데 서범석 의원등 5명
      은 국제공산당사건에 연루된 혐의로 구속되었다. 6월 2일에는 곽상훈
      의원 등 6명이 같은 혐의로 구속되었다. 이 11명은 내각제 개헌을 추
      진하는 핵심세력이었다. 반공검사로 유명했던 선우종원도 공산당 혐
      의를 받고 피해다니다가 미8군 정보처의 주선으로 밀항선을 타고 일
      본으로 달아나 망명했다. 야당 탄압에 앞장선 것은 일제고등계 형사
      출신들이 포진한 치안국 사찰과, 김창룡의 육군 특무대, 원용덕의 헌
      병대였다. 군정시대의 수도경찰청 수사과장 노덕술도 반민특위를 피
      해 헌병대에 들어가 장교로 근무하고 있었다. 이들은 독립운동가들을
      쫓던 솜씨를 반 이승만 계열의 국회의원들 사냥에 발휘하고 있었다.
      이승만은 친일경찰들을 도구로, 반 이승만 세력은 미군과 미국대사관
      을 지원세력으로 이용하고 있었다.

      국회의원 통근차가 헌병대로 끌려간 26일 오후 4시 대구 육본에서
      열린 참모회의는 격앙되어 있었다. 이종찬 총장의 생전 증언--.

      "국회사태를 보고하면서 김종평 정보국장은 쿠데타적 사건이라고
      했다. 나는 '군이 정치에 이용되어선 안된다'고 강경하게 말했다. 참
      모들은 자기들끼리 회의를 한 뒤 보고하겠다고 했다. 한 시간쯤 지나
      니 각부대에 보낼 훈령을 만들어 놓았다고 보고해서 상황실에 갔더니
      칠판에 '군은 동요하지 말고 국토방위의 신성한 임무만 다하라'는 요
      지가 쓰여 있었다.".

      '육군장병에게 고함'이란 제목으로 유명해진 이 육군본부 훈령217
      호는 이용문 국장을 대리하여 참모회의에 참석한 박정희 차장이 기초
      한 것이었다.

      요지는 이러했다.

      <군은 국가민족의 수호를 유일한 사명으로 하고 있으므로 어느 기
      관이나 개인에 예속된 것이 아닐 뿐 아니라 변천무쌍한 정사에 좌우
      될 수 없는, 국가와 더불어 영구불멸히 존재하여야 할 신성한 국가의
      공기이므로 군인된 자 수하를 막론하고 국가방위와 민족수호라는 본
      분을 떠나서는 일거수일투족이라도 절대로 허용되지 아니함은 재론할
      여지가 없는 것이다. 정치변동기에 처하여 군의 본질과 군인의 본분
      을 망각하고 의식-무의식을 막론하고 정사에 간여하여 경거망동하는
      자가 있다면 누란의 위기에 있는 국가의 운명을 일조에 멸망의 연에
      빠지게 하여 한을 천추에 남기게 될 것이다. 충용한 육군장병제군,거
      듭 제군의 각성과 자중을 촉구하니 여하한 사태에서라도 각자 소임에
      일심불란 헌신하여 주기를 바란다. 육군참모총장 육군중장 이종찬>.

      시인 구상은 1970년대에 한 신문에 회고담을 연재하면서 '이 훈령
      을 쓴 사람의 이름은 지금 밝힐 수 없다'고 썼다. 박 대통령은 이 글
      을 읽고서는 측근 들에게 "구상 선생은 별것까지 다 기억하고 있구먼"
      하며 웃더라고 한다. (계속).

      (*조갑제출판국부국장*) (*이동욱월간조선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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