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1998.01.12 20:19
## 일제교과서로 배우다 ##.
박정희가 구미보통학교에서 배웠던 '보통학교 국사' '보통학교 수
신서' '창가' 교과서들(조선총독부 발간)을 삼성출판박물관에서 구해
읽어보았다. '국사', 즉 일본역사 교과서는 전국시대에서 명치유신까
지의 시대를 이끈 인물들을 중심으로 역사를 기술하고 있다. 플루타
크 영웅전을 읽는 기분을 느끼게 한다. 전국시대의 세 영웅인 오다
노부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도쿠가와 이에야스와 많은 무사들, 그
리고 학자들이 등장하고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일으킨 임진왜란 이야
기도 실려있다.
사진설명 :
박정희가 구미 보통학교에서 배운 '국사'(사실은 일본사) 교과서의
한 쪽.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나고야성에서 조선으로
출전하는 군선을 바라보고 있는 장면의 그림이 실려있다. 이 교과서는
삼성출판박물관의 김종규 회장이 자료로 제공한 것.
그 내용은, 도요토미 히데요시가 명을 치기 위해서 길을 빌려달라
고 조선에 요청했더니 조선이 명을 두려워하여 이를 거절함으로써 화
를 자초했다는 식이다. 13만의 원정군이 출항하는 장엄한 모습을 나
고야성에서 바라보는 도요토미 히데요시의 그림이 실려있다. 원정군
은 석달만에 조선을 거의 점령한다. '조선은 당파싸움으로 방비가 허
술하여 일군은 싸우면 이기고 공격하면 함락시키면서 선정을 통해서
백성들의 민심도 얻었다'는 것이다.
명군이 개입하여 일단 후퇴하던 일본군이 벽제관에서 6∼7배나 되
는 명군을 격파한 이야기도 자랑스럽게 쓰여 있다. 수군만이 이순신
에게 격파되어 육군을 지원하지 못하게 되었다고 기술했으나 조선으
로부터의 철군도 안전하게 이루어졌다고 했다. 이 전쟁은 주로 명군
과 일군 사이의 전쟁이고 조선군은 오직 달아나는 존재였다는 식이다.
이어서 전국시대의 막을 내리게 하는 도쿠가와 대 미쓰나리의 세
키가하라 결전의 장면이 장엄하게 묘사되고 있다. 소년 박정희는 이
순신과 나폴레옹을 알기 전에 먼저 일본역사의 영웅들 이야기를 읽고
큰 감명을 받았다고 한다. 예컨대 이 '국사' 교과서에 나오는 도쿠가
와 막부시대의 무사 오이시 요시오 이야기를 읽고서 가슴이 뛰었을
것이다.
오이시 요시오는 억울하게 배를 갈라 자살한 주군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 46명의 동지들을 규합한다. 이들은 눈덮인 심야에 주군을 죽
게 했던 봉건영주 요시나카의 집으로 돌입하여 그의 목을 베고 주군
의 무덤 앞에 목을 바친 뒤에 자수하여 모두 할복 자살한다.
이 일본 역사의 영웅들 사이에 '이퇴계와 이율곡' '영조와 정조'
'한국병합' 이야기가 끼여있다. 이 교과서는 이율곡을 설명하면서 그
가 선조 때 김효원과 심의겸 사이의 당파싸움을 막아보려고 했으나
실패함으로써 '정권을 잡기 위하여 상대에게 죄를 씌우고 정치를 어
지럽히는 폐해가 생겨 지금도 조선인들 사이에는 노-소-남-북의 차별
이 존재한다'고 지적했다. 이 교과서는 또 영-정조 시대에 두 현군이
당파싸움을 누르려고 노력했으나 후대에 가서는 수포로 돌아갔다고
기술하고 있다.
'조선의 국정'이란 항목은 '우리나라에서는 정한론까지 대두할 정
도인데도 조선은 여전히 쇄국양이의 방침을 계속하고 있었다'로 시작
된다.
'조선인 가운데는 청국에 의존하려는 사람들과 우리나라에 의존하
려는 사람들이 있어 서로 싸우고 있었습니다. 명치 17년, 청국에 의
존하려고 하는 세력이 청국병의 힘을 빌려서 우리나라에 의존하려는
세력을 치고…'.
교과서는 이 장에서 '조선은 자력으로서는 독립을 유지하지 못하
고 항상 타국의 압박을 받아 동양의 평화를 파괴하는 불씨가 될 우려
가 있었기 때문에 일본이 조선을 보호국으로 삼았다가 이토 히로부미
가 흉도에게 암살되었으나 한민족 가운데서도 한-일합병을 원하는 사
람들이 많아져 드디어 합병을 보게 되었고 그 뒤 조선은 크게 발전하
고 있다'고 끝맺고 있다.
이 '국사' 교과서를 읽은 소년 박정희의 뇌리에는 아마도 무사의
나라 일본사람들의 의리,상무정신,애국심과, 양반의 나라 조선지배층
의 사대성,당파성,문약성이 선명한 대조를 이루면서 깊은 인상을 남
겼을 것이다. 그 뒤에 읽은 춘원 이광수의 '이순신'은 그 내용으로
보아 왜적에 대한 적개심보다는 애국적 군인을 모함하는 조선의 양반
정치인들에 대한 경멸감을 더 강화했을 것이다.
박정희의 역사관을 잘 보여주는 책은 최고회의 의장 시절에 쓴
'국가와 혁명과 나'이다. 이 책에서 박정희는 당파싸움을 '세계에서
도 드물 만큼 소아병적이고 추잡한 것이었다'고 비판하면서 그 원인
은 불교에서 유교로 문물제도가 바뀌어 민족자주의 기개를 좀먹게 된
데서 연유한다고 했다. 그는 이를 민족사의 악유전이라 불렀다. '언
으로는 수를 가고행으로는 말을 차지하면서 거기다가 시비와 패거리
라면 창자를 움켜쥐고 달려들었던' 조선조 양반정치의 전통을 이어받
은 것이 지주정당인 한민당과 그 쌍생아 자유당과 민주당, 즉 이른바
구정치인들이라는 것이다.
'근대화 혁명가' 박정희의 혁명적 논리, 그 핵심은 이승만 정권과
장면정권을 다 같이 '이조의 당파정치 전통을 이어받은 봉건적 수구
세력'으로 규정한 점이다. 그는 장면 정부의 민주성까지도 실현불가
능한 서구민주주의를 맹목적으로 추종하는 사대주의라고 평가절하했
다. 심지어 '장면 정권은 민주당이란 가면을 쓴 내면상의 자유당 정
권'이라 규정하기도 했다. 조선조 양반정치-한민당-자유당-민주당계
열을 당파적 이해관계에 집착하는 봉건정치세력이라 해석하고 이를
애국적 엘리트로 교체한 것이 바로 5·16이라는 박정희식 혁명 논리,
그 역사관의 씨앗을 우리는 구미보통학교의 교실에서 발견할 수가 있
다. 그 씨앗이란 소년의 마음속에 뿌려진, 조선조의 양반정치 행태에
대한 경멸과 증오심일 것이다. 가난한 소작농의 아들인 소년에게는
조선조적인 봉건질서가 이론이 아니라 현실이고 체험이었다.
'수신'은 요사이의 도덕 과목에 해당한다. 교과서의 제목을 보면
동양적인 미덕과 황국신민으로서의 공덕심을 기리는 목적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선생님을 존경하라' '친구들' '황태후 전하'
'효행' '형제' '건강' '규율' '예의' '근로' '인내' '저축' '신을 존
경하라' '미신에 빠지지 마라' '공정' '사람의 명예를 중히 여겨라'
'진심으로 임하라' '공덕' '공익' '은혜에 보답하라' '충군애국'.
'제17 공덕'을 읽어보면 우리나라 사람들에게 이미 익숙해진 일화
가 나온다. 런던의 한 공원에서 한 아이가 울고 있었다. 지나가던 신
사가 이유를 물었더니 소년이 하는 말, "바람에 날린 모자가 잔디밭
에 들어갔습니다. 잔디를 밟으면 안되기 때문에 이러고 있습니다."
신사는 지팡이로 모자를 꺼내준다. 그리고는 이런 설명이 따른다.
'이런 소년이 길에서 종이공을 가지고 논다든지 나무를 당겨서 휘
게 한다든지 학교의 물건을 상하게 할 리가 있겠습니까?'.
'제20 충군애국'에서는 러시아-일본 전쟁 때 여순공방전의 이야기
가 소개되어 있다. 여순항을 봉쇄하기 위하여 일본군이 기선을 항구
에 침몰시키는 작전을 하는데 병사들이 서로 먼저 이 위험한 작업에
참여하려고 자원경쟁을 벌였다는 것이다. 소년 박정희가 배웠던 '창
가'과목은 그 교과서에 쓰인대로 '황국신민다운 정조의 함양에 적절
한 노래들'을 골라서 부르는 시간이었다. 당시는 우리 가곡이 아직
보급되기 전이었기 때문인지 곡목은 전부가 일본의 민요, 군가, 동요
이다. '군인아저씨' '우리들은 2년생' '시계의 노래' '후지산' '국민
진군가' '일본해 해전' '하늘의 용사' '북만의 여' '황성의 달' '만
리장성' '조선철도찬가' '아시아의 빛' 등등.
'조선철도찬가'의 1절-. '흥아일본의 아침에/대륙을 향하여 힘차
게/희망을 실어서 달린다/광채도 멋진 경부선'. '계속'.
'조갑제 출판국부·이동욱 월간조선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