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 메뉴 건너뛰기 (컨텐츠영역으로 바로 이동)

[박정희의 생애] "내 무덤에 침을 뱉어라!"...(56)

      입력 : 1997.12.15 19:12



      ### (56) 귀환 ###.

      26일 오후6시에 청와대 본관에서 대통령을 떠나보냈던 부속실의 이
      광형부관은 이날 밤을 혼돈과 불안 속에서 보냈다.

      사진설명 :아버지 영정 앞에서 하직을
      고하는 대통령의 세 자녀. 1979년 11월3일 중앙창앞 영결식장에서.
      가운데 선 박지만 생도는 육사 내무반 잠자리에서 영문도 모른 채 새벽같이
      집으로 불려왔다가 비보를 들었다.


      총성 보고, 와이셔
      츠차림으로 돌아온 비서실장, 최규하총리와 장관들의 잇단 출현. 이광
      형은 '와이셔츠 차림의 비서실장'이 아무래도 불길한 사건을 의미한다
      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2층 비서실장실로 올라갔다. 실장실은 문이 굳
      게 잠겨 있고 전실에는 당직근무중이던 의전수석실의 정기옥(현재 외무
      부의전장)비서관이 앉아 있었다. 안에서는 비서실장이 총리와 몇몇장관
      들을 불러 회의를 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이광형은 전실에서 서성대고
      있었다. 최광수의 전수석비서관 등 수석들이 모여 들었다. 그들은 전실
      의 소파에 앉아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기다리고 있었다. 이광형
      의 초조한 눈이 정기옥과 마주쳤다. 정비서관은 종이에다가 볼펜으로
      재빠르게 '쿠데타'라고 쓰더니 새까맣게 덧칠해버렸다. 목소리를 낮춘
      이광형은 놀라서 물었다.

      "무슨 말씀이오."
      "아니, 아니, 몰라, 몰라, 아무것도 아니야.".

      당황한 이광형은 혹시 가족들이 부속실로 전화를 걸어올까 걱정이
      되어 일단 1층으로 내려왔다. 부속실장 박학봉비서관 집에 전화를 걸었
      으나 없었다. 경호데스크 근무자들에게 "어떻게 된 것이냐"고 물었다.
      모른다는 대답뿐이었다. 밤10시를 넘고 있었다. 다시 비서실장실로 올
      라갔다. 총리, 실장, 장관들은 어디론가 떠나고 수석비서관들이 앉아
      있었다.

      최광수의전수석 옆자리에 가만히 앉아 낮게 물어보았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가족분들, 영애분들 지금 어디 계시는가."
      "모르겠습니다. 지금 주무시는지."
      "아무 연락이 없었지?"
      "각하께서 안들어오시는데 어디 계십니까."
      "응, 조금 늦으실 거야. 만약 영애분들이 물으시면 곧 들어오실 거
      라고 해."
      분명히 무슨 일이 진행되고 있었다. 직급이 낮은 이광형으로서는 접
      근할수 없는 곳에서 무슨 사건이 일어나고 있었다. 높은 분들로부터 소
      외된 이부관은 얌전히 부속실을 지키면서 바깥에서 나는 소리에 청각신
      경을 곤두세워놓고 있었다. 낡은 건물의 낡은 마루바닥과 나무계단은
      그들의 움직임으로 삐걱대고 있었다. 발자국 소리들이 일층에서 이층으
      로 급하게 올라갔다가 재빠르게 내려오고 있었다. 밤12시에 박학봉 부
      속실장이 들어왔다.

      사정을 모르기는 그도 마찬가지였다. 두 사람은 속이 타니 냉수만 들
      이켰다. 이부관은 본관 경호데스크로 가 보았다. 무전기에서 다급한 목
      소리가 흘러나왔다.

      "경호실장 차가 경부고속도로 톨게이트를 벗어나 달리고 있다.".

      경찰로부터 올라온 보고였다. 그때는 시체가 되어 궁정동 나동경호
      원 대기실에 쓰러져 있었던 정인형경호처장의 차를 운전기사가 개인용
      무로 몰고 가는 것을 포착한 내용이었다. 이 보고로 해서 심야에는 '대
      통령이 납치되셨다'는 첩보가 치안기관에 쫙 퍼졌다. 새벽2시 다시 청
      와대로 돌아온 김계원실장은 수석비서관들에게 '대통령 서거'를 알린
      뒤에 부속실의 두 사람을 불러서 멍한 표정으로 비보를 전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둘째 딸 근영과 전석영총무비서관이 운구를 위해서
      병원으로 간 사이 부속실장 박학봉과 이광형부관은 시신을 받을 준비를
      해야 했다. 사람들을 불러모았다. 피아노 방에 파티를 할 때 쓰던 탁자
      와 식탁보가 정리되어 있었다. 이것들을 소접견실로 옮겨 붙여 받침대
      를 만들고 위를 덮었다. 이광형은 지하실로 뛰어내려가 집기창고를 열
      었다. 병풍과 향로, 향 등 제기를 갖고 올라 왔다.

      박대통령이 조상과 먼저 간 아내를 위해서 썼던 것이 이제는 자신의
      소용이 되었다. 그는 다시 현관 밖으로 뛰어나갔다. 대통령이 제일 좋
      아했던 국화 화분이 양쪽으로 줄을 지어 놓여 있었다. 두 개를 들고 들
      어왔다.

      제단을 차리고 향불을 붙였는데 무엇인가 빠진 것이 있는 것 같았다.
      영정이었다. 부속실에 걸려 있던 대통령의 사진을 떼내어 까만 리본을
      둘렀다.

      새벽2시20분쯤 국군서울지구병원 정문에 도착한 전석영 비서관은 헌
      병의 저지를 받았다. 헌병이 안으로 전화를 하니 한 장교가 나왔다. 전
      비서관이 사유를 설명했는데도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각하를 모시러 왔는데 무슨 소리야.".

      호통을 치고나서야 들어갈 수 있었다. 병원장실에서 김병수준장을
      만나 대통령의 시신이 안치된 방으로 같이 갔다. 대통령은 양복바지를
      입고 있었다. 상체는 피묻은 와이셔츠 위에 환자복을 걸치고 있었다.근
      영이 가지고 온 옷보따리를 풀어서 준비해간 양복으로 갈아입히는 일은
      김원장과 전비서관이 했다. 따라간 경호원도 거들었다. 근영은 아버지
      의 다리를 만지고는 울음을 쏟았다. 대통령의 시신에서 벗긴 피묻은 와
      이셔츠와 속옷을 보따리에 싼 근영은 들것에 실린 아버지의 시신과 함
      께 병원에서 내준 구급차에 탔다. 박정희는 아홉 시간만인 27일 새벽
      3시에 청와대로 돌아왔다. 군용들것에 실린 아버지를 앞세우고 옷보따
      리를 가슴에 품고 본관 현관으로 들어오던 근영의 모습은 그 자리에 있
      었던 사람들의 뇌리에 잊혀지지 않는 잔영으로 남았다.

      대통령의 시신을 받은 이광형은 "이군, 나 경호실장 하고 저녁 먹고
      올테니 서재문 잠구코…"하던 대통령의 마지막 말이 귓전에 쟁쟁했다.

      소접견실의 응급개조한 받침대 위에 시신을 눕였다. 머리를 입구쪽으로
      향하게 했다. 누구인지 울음을 터뜨렸다. 여기저기서 동시에 흐느낌이
      퍼졌다. 집총한 경호원들도 울었다. 이광형은 울면서 대통령의 손도 만
      져보고 얼굴도 살펴보았지만 총상 자리는 찾지 못했다. 평온하기 그지
      없는 표정이었다.

      이때부터 청와대 직원들은 대통령의 집안사람들과 고관들에게 전화를
      걸기 시작했다. 육군사관학교에 재학중인 아들 박지만생도에 대한 연락
      은 이부관이 맡았다. 백석주육사교장을 전화로 불렀다. 잠에서 덜 깬
      목소리였다.

      "여기 청와대인데요."
      "왠 일입니까."
      "교장님 혼자서만 아시고요, 지금 빨리 사람을 내무반에 보내서 지
      만 생도를 깨워주십시오. 청와대로 보내주세요.".

      "무슨 일입니까."
      "더 이상 묻지마시고 각하께서 찾으시니까 빨리 보내주세요. 그리고
      절대 보안해주십시오.".

      육사 생도대장이 지만을 깨워 차에 태웠다. 지만은 '날이 밝으면 토
      요일이라 외출을 나가게 되어 있는데 왜 찾으실까. 아버님께서 또 나를
      혼낼 일이 있으신가'하고 의아한 생각에 잠긴 채 청와대로 달렸다. 청
      와대본관에 도착하니 의장대, 향냄새, 그리고 서성대는 사람들. 마중나
      온 이부관에게 그는 "아니, 왜 이래요"라고 했다.

      "각하께서 돌아가셨습니다. 이리 와서 분향부터 하십시오.".

      그 순간 아들은 비틀했다.(계속).

      [조갑제 출판국부국장·이동욱 월간조선기자]
      이전 기사 다음 기사
      sns 공유하기 기사 목록 맨 위로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