입력 : 1997.11.24 19:06
'성도 청해 이씨 춘자지묘'. 오늘도 당신을 보러 경도 공원묘지에 갔
었소. 생전 그토록 좋아하던 커피를 당신 앞에 바친 지 어언 1년하고도
두달째요. 내 시집 '그대 빈자리'도 비닐에 싸인 채 그대로 놓여 있구려.
올 5월 일산 호수마을로 집을 옮겼소. 7년전 당신과 함께 장만했던
백마마을 아파트가 홀로 지내기에 너무 힘들었기 때문이오. 당신과 함께
마련한 손때 묻은 집기들엔 당신의 웃음이 아직도 어려 있소. 저녁마다
집으로 찾아드는 내 발걸음 왜 이렇게도 무거운지 모르겠소. 누구를 찾
아어디로 찾아드는지 현관문을 열면 당신이 곧 나타날 것만 같아 괴로웠
소.
하지만 낡은 옷장과 화장대는 여전히 나와 함께 있소. 25년전 인사동
가구점에서 "옷장만 사주면 업어줄게요"하며 떼쓰던 당신 모습이 생생하
오. 그 안엔 당신이 남긴 코트, 구두, 백 하나씩을 남겨 두었소. 시장
다닐 때 쓰던 동전지갑엔 콩나물 사고 남긴 1백원짜리도 몇 개가 그대로
있소.
당신 기억하오. 작년 7달동안 우리 가족을 그처럼 괴롭혔던 '다발성
근육염'. 연세대 세브란스병원 1050호실 독방에서 애처롭게 신음하던 당
신. 임종을 앞두고는 주치의에게 "이제 그만 끝내달라"고 애원도 했잖소.
그 무렵나는 당신을 홀로 보내기 싫어 가방에 칼과 유언장을 준비하고
다녔소. 병실 안에서 아이들을 물리치고는 "그토록 괴로우면 함께 죽자"
고 했을 때 삭아든 근육으로 움직이기 어려웠지만, 당신은 마지막 힘을
다해 내 손을 꼭 잡았었소.
"안돼요!" 여느 때와 다른 힘찬 목소리에 난 얼마나 무안했는지. 하지
만 그게 유언의 시작일 줄은 몰랐소. "애들 잘 부탁해요. 내 잠자리 집
에서 그다지 멀지 않으니 자주 들러 주세요"라고 당신은 말했소.
그러고 보니 당신은 오래전부터 죽음을 연습하고 있었나 보오. 4년전
이북 5도청 공원묘지 신청접수 때 당신이 그토록 고집부린 걸 이제야 이
해할 수 있을 것 같소. 잘 한 일이었소. 집에서 가깝게 마련한 당신 잠
자리에 언젠가는 나도 함께 할 수 있을테니 말이오. 나에게 남은 일은
이제 그것 뿐이오.
우리 부부 만나서 당신이 먼저 가기까지 39년 세월이 흘렀소. 첫 애
낳고 몸조리 잘못해 얻은 결핵이 불행의 씨앗이었소. 10년 치료 끝에 폐
한쪽을 도려내고서야 잠깐 행복이 찾아왔었지. 그 때부터 당신은 남은
여생 덤으로 산다면서 즐거워했었소. 유난히 꽃을 좋아했던 당신 덕에
우리 북가좌동 집이 장미집, 목련집으로 불렸던 것 기억하오. 행주산성
낚시터에 가 즉석찌개를 끓이며 애들처럼 좋아했던 우리 부부였잖소. 당
신이 귀여워했던 우리집 강아지 '똘이'는 두달만에 당신 뒤를 따랐소.주
인 잃은 집에서 원인 모를 병에 시름시름하다 죽었소. '똘이'도 당신 무
덤뒷산에 묻어줬으니 천상에서라도 당신을 찾아갈게요.
당신을 보내면서 병실에서 눈물과 함께 끄적거린 10여편 시는 내 7번
째 시집으로 묶여 나왔소. '그대 빈 자리'. 당신에 매여있던 날 정리하
고픈 생각에서 냈지만, 잦은 독자전화가 오히려 당신을 더 떠올리게 하
고 있소. 모두들 나를 애처가라고 하지만 그렇게 불리기는 싫소. 한 가
정남편으로서, 가장으로서 내 할 일을 거짓없이 이행했을 뿐이오. 이젠
차분히 당신에게 내 시를 들려주고 싶소.
'그대 머물다 떠나간 / 긴 긴 시간의 내 옆자리가 / 너무도 크게 비
어있다. / 휑하니 뚫린 구멍속으로 / 살갗에 차가운 밤바람 소리 / 달빛
에 목놓아 우는 추억들./ 나는 얼마나 더 오래도록 / 이 환영의 우물 속
에 갇혀 /추억을 먹고 살아야 할 / 한낱 당신의 노예일 것인가.'(당신의
노예).
'저승새 찾아 / 이승새가 운다 / 울고 있다. / 살아 생전 / 빚 진
죄값으로 / 그래서 / 또 / 운다.'(아내를 보내고 나서) <김시철·한국
펜클럽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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