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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떠도는 자들의 노래.....이문열(58)

      입력 : 1997.06.30 15:37



      ## 제5장 형제②

      명훈은 거기서 자신이 조사한 사건의 개요를 다시 한번 정리해 보았
      다. 정부가 농촌의 지력을 증진시키기 위해 파격적인 조건으로 농가에
      면실박을 공급했다. 정부보조 6할에 자부담 4할인데 그 4할도 융자를
      해주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면실박의 수량이 부족해
      한꺼번에 전 농가에 공급하지 못하고 군단위로 순차적인 배정을 했는데
      그게 문제의 원인이 되었다. 어떤 악덕업자가 면실박이 배정된 군에서
      배정된 면실박을 헐값에 되사들여 아직 배정 안된 군에 납품하고 폭리
      를 취한 일이었다. 곱배기 장사인데다 수량이 많다 보니 한 군만 납품
      해도 수천만원의 이득을 볼 정도였다.

      명훈이 그 일에서 범법의 냄새를 맡은 것은 먼저 그 업자인 정 사장
      의 폭리쪽이었다. 그러나 이제 정 사장의 말을 들어보니 반드시 범법으
      로 몰아세울 만한 폭리도 아니거니와 거래의 전 과정도 용의주도하게
      합법성을 확보하고 있는 듯했다. 그래서 농정의 혼선과 국고의 낭비를
      들먹여 보았지만 명훈의 법률지식으로는 어떻게 정 사장에게 그런 결과
      의 책임을 물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런 막막함을 다 헤아리고 있다는 듯 정 사장이 다시 이죽거렸다.

      "글치만 그걸 우째 내가 책임져야 하노?"
      "최소한 정부보조가 들어있는 물건을 헐값에 팔아치운 농부들과 공
      동책임이라도 지셔야겠지.".

      "그래도 죄형법정주의 사회에서 죄목은 있어야 안되겠나? 우리 죄목
      이 머꼬? 촌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정부혜택을 포기한긴데, 그라믄 우리
      법에 정부혜택포기죄라는 것도 있나? 면실박이 땅기운 돋우는데 도움이
      되고 정부 보조가 많으이 덥석 받기는 했지마는 뿌리기 귀찮고 효과가
      더디이(더디니) 그양 처매삐리(처버려) 났다가 살 사람 있다 카이 넘가
      주고 만긴데."
      "….".

      "법으로 걸라카믄 몰라, 공무원법의 직무유기죄로 처음 그따우 되
      도 않는 발상을 한 공무원이나 걸어 열(넣을) 수 있이까. 땅에 좋다카
      는 그 한가지로 농촌 현실도 안살피고 집집이 면실박을 떠딩긴(떠안긴)
      그 정책입안자 말이라…."
      "그렇다고 자부담보다도 싸게 그걸 되사들여 농민들 손해보이고 국
      고보조는 통째 들어먹는 게 죄가 안될까….".

      아직 명훈의 어조는 강경했지만 그 내용은 어느새 추궁이라기보다는
      문의에 가까웠다. 그때 이미 명훈은 자신의 실패를 단정하고 있었다.
      그런데 정사장의 지나친 자신감이 일을 반전시켰다.

      "그거라믄 벌씨로 결론 났다꼬. 인제잉까 말하지만 내 이 일로 법앞
      에 끌래 댕긴 게 한두 번이 아이라. 돈내미 맡은 기자들이 파리떼처럼
      달라들어 여러 무리(번) 훌치고 갔다꼬. 그 바람에 나도 반 변호사 됐
      다카이. 결국 나는 무죄라. 그러이….".

      그 노련한 전문가는 그렇게 말해놓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방
      을 나가려다 약간 멍해져 그대로 앉아있는 명훈을 딱하다는 듯 내려보
      며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냈다.

      "어디서 내 얘기 들었는지 몰따마는 막차를 타도 한참 막차를 탄기
      라. 더군다나 나는 이제 면실박 장사 손띵다꼬. 또 할 기라믄 말썽이
      귀찮아서라도 몇푼 풀겠지마는 인제는 그럴 필요도 없고오 .".

      정 사장은 그 말과 함께 잡히는 대로 천원짜리 몇장을 꺼내 술상 모
      서리에 놓았다.

      "구름 먹고 바람똥 싸던 내 젊을 때 생각하이 그양 갈 수 없어 몇푼
      놓고 가누마. 있다가 술값 내고 남으믄 고히(커피)값이나 하라꼬. 나는
      바빠서 이만….".

      어쩌면 그날 정 사장이 당한 불행은 지나친 자신감에서가 아니라 부
      주의 때문이었는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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